이달 초 서울 영등포구 한 신축 아파트 단지에서는 오전 8시부터 관리사무실 앞에 긴 줄이 늘어섰다. 이 아파트 물놀이터가 처음 개장하는 날이었다. 입주민들은 1000원에 가구당 3개까지 판매하는 물놀이터 입장 팔찌를 사려고 판매 시작 1시간 전부터 기다렸다.
팔찌는 입주민만 구매할 수 있었다.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으로 입주민임을 확인한 뒤에 팔찌를 판매했다. 아파트 관계자는 “입주민도 다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인데 외부인까지 받으면 정작 입주민 이용이 어렵다”고 말했다.
해당 아파트 온라인 카페엔 이 같은 방침이 당연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사유지인 아파트 시설을 이용하는 것인 만큼 외부인은 출입이 금지돼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부는 “동네 아이들과 학군도, 놀이터도, 학원도 겹치는데 아이들이 나중에 (아파트별로) 편가르기 할까 걱정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커뮤니티 시설인 만큼 입주민이 우선권을 갖는 건 타당하지만, 잠시 다니러 온 친구나 친인척 등의 이용까지 과도하게 제한해 지나치게 폐쇄적인 것 아니냐는 고민이다.
단지 내 물놀이 시설을 갖춘 다른 아파트 사정도 대부분 비슷하다. 경기도 김포의 한 아파트도 코로나 유행으로 중단됐던 물놀이터를 16일부터 열기로 했는데 이용권(3000원) 구매 시 입주민 카드를 제시해야 한다. 방문자는 입주민과 동행했을 때만 1000원을 더 내고 입장할 수 있다. 해당 단지 옆에 사는 한 학부모는 “인근에 물놀이 시설이 없어 아이들과 가고 싶었는데 아쉽다”고 말했다.
그간 아파트 단지에서 인근 주민의 시설 이용을 막는 건 종종 논란이 됐다. 아파트를 가로질러서 갈 수 있는 등굣길의 외부인 통행을 막거나, 외부인이 놀이터 이용 시 쫓아내 문제가 된 적도 있었다. 여기에 물놀이 시설 이용 제한이 더해진 것이다.
광주 한 아파트 커뮤니티에는 물놀이터 입장 논란과 관련해 “아이들이 서로 어울리면서 놀게 해줘야지, ‘우리 아파트니 우리 아이들만’ 하면서 키우는 것보다 배려하는 걸 알게 하는 게 어른 아니겠느냐”는 글이 올라왔다. 시설 이용자가 비용을 부담한다면 외부인도 이용할 수 있지 않느냐는 주장이다. 이에 “수영장에 돈을 내고 가면 된다” “물놀이터도 아파트 주민들 재산”이라는 반박이 잇따랐다.
전문가들은 지역 공용공간 부족이 사유지 시설 논란의 한 배경이라고 지적한다. 장경은 경희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14일 “특정 주민들이 관리비를 부담하고 지역의 모든 아이들이 이용해야 한다고 하면 동의하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라면서 “공공기관이나 지자체에서 접근할 수 있는 여가시설, 놀이시설을 더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아파트가 갈수록 폐쇄적 공간으로 인식되는 것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있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아파트는 큰 담벼락을 경계로 주변과 자신을 구분 지으려는 상징이 되고 있다”며 “(외부인 출입 금지) 현상이 옳지는 않지만 아파트에 대한 인식 변화에서 나오는 당연한 결과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성윤수 기자 tigri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