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열린 사형제 위헌소원 사건의 공개변론에서 헌법재판관들은 “공격적인 질문을 양해하기 바란다”며 양측에 반론 성격의 질문들을 던졌다. 재판관들의 ‘압박 질문’은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은 이에게 사형제 위헌소원을 청구할 요건이 있는지부터, 만일 위헌 결정이 이뤄질 경우 후속 절차는 어떻게 되는지까지 다양했다. 질문을 받은 양측은 “즉답이 어렵다” “서면으로 답하겠다”는 말을 많이 했다. 재판관들은 “함께 고민하자는 질문이며, 시험이 아니다”고 했다.
이선애 재판관은 사형 위헌론을 펼친 청구인 윤영석 측에게 “타인의 도움으로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려는 자는 마찬가지로 타인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종이에 적어 전달했다. 이어 “의견을 구한다”고 말했다. 앞서 청구인 측이 파워포인트(PPT) 자료로 “국가는 국민의 생명권을 침해할 권리가 없다”고 강조하자 반론을 제시하고 견해를 말해 보도록 한 것이다. 청구인 측은 “루소의 이 부분은 처음 본다”면서도 “내가 보호 받기 위해 남을 죽여도 된다는 취지로 이해되는데, 이는 현대의 이론에선 잘못됐다”고 답했다.
이은애 재판관은 법무부 측을 상대로 형이 집행되지 않은 사형 확정자들의 판결 확정 연도를 제출하라고 했다. “사형 집행은 오로지 법무부 장관의 판단에만 맡겨지느냐”고 묻기도 했다. 법무부 대리인인 정부법무공단은 “장관의 결정에 따라서 검사가 집행한다”고 답했다. 이 재판관이 “범죄인 인도를 받은 예가 있느냐”고 묻자 정부법무공단은 “그 부분을 알지 못한다”며 “서면으로 내겠다”고 답했다. 한국이 2011년 ‘범죄인인도에 관한 유럽협약’을 비준해 유럽으로부터 인도받은 범죄자에 대해서는 사형 집행을 못 한다는 점을 고려한 질문이었다.
재판관들은 반복적인 찬반 양측의 논지와 관련해서는 질문하지 않았다. 헌재는 1996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이미 사형제의 위헌성 여부를 숙고했고, 웬만한 주장들은 모두 ‘구문’이 돼 있다. 재판관들은 대신 사형의 범죄 위하력(형벌로 위협함으로써 범죄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힘)이나 경제적 효과에 대해 새로 입증된 과학적 근거를 궁금해 했다. 재판관들은 청구인 측이 주장에 인용한 해외 연구 결과들에 대해 번역본을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이와 관련해 헌재는 앞서 새로 판단에 참고해야 할 부분을 사형의 범죄 억지력 효과로 봤다. 직권으로 법경제학 전공인 고학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참고인으로 지정하고 의견을 요청한 것이다. 하지만 고 교수는 “사형제가 억지력을 발휘하는지에 대해 임의적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는 답변을 했다. 외국에서도 실증적 논의가 불충분한 상황이고, 국내에서의 심층적인 분석은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헌법연구관 출신인 한 법조인은 “정답이 없는 문제지만 답안지를 써야 할 상황”이라고 했다.
이날 대심판정 방청석에는 마리아 카스티요 페르난데즈 유럽연합(EU) 대사가 앉아 있었다. 앞서 청구인 측은 EU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사형 폐지 경향을 강조했지만, 법무부 측은 “유럽의 사형 폐지는 국민 의식구조 변화 때문이라기보다 경제 발전을 위한 선택”이라 반박했었다. 인민혁명당 사건으로 1975년 사형이 집행됐으나 2005년 재심을 거쳐 무죄가 확정된 이수병씨의 부인 이정숙씨의 모습도 보였다. 7대 종단 대표들은 사형제 위헌 결정을 촉구하는 공동의견서를 내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형민 임주언 구정하 기자 gilel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