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엄마랑 같이 있을 수 있어.”
엄마 곁에 늘 찰싹 붙어있고 싶던 소녀가 물었다. 탁구선수 출신으로 학교에서 코치를 하던 어머니는 “탁구하면 돼”라고 답했다. 그렇게 초등학교 1학년 때 탁구를 시작한 ‘엄마바보’ 소녀가 한국 탁구의 미래로 우뚝 섰다. 한국 탁구 국가대표 김나영(17·포스코에너지) 이야기다.
남자부에서 초등생 신동 이승수(11·대전 동문초), 차세대 에이스 조대성(21·삼성생명)이 올해 탁구계 샛별로서 두각을 나타냈다면, 여자부에선 김나영이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지난 4월 전국남녀종별선수권대회에서 단식·복식·단체전 3관왕을 차지했고 올해 시작된 한국프로탁구리그(KTTL) 챔피언결정전에선 홀로 2승을 따내며 팀의 원년 통합우승에 일조했다.
2022 청두세계탁구선수권대회 및 항저우아시안게임 파견 국가대표 선발전에선 여자부 1위로 통과하며 생애 첫 태극마크를 달았고, 지난달 월드테이블테니스(WTT) 피더 시리즈 복식에서 조대성과 은메달을 합작했다.
김나영은 최근 국민일보와 전화인터뷰에서 “대성 오빠와 처음 호흡을 맞춰 연습시간이 충분하진 않았지만 같은 목표를 바라보고 열심히 한 덕에 좋은 결과가 있었다”며 “태극마크를 달고 나간 첫 국제대회였는데 더 책임감이 생기고 무게감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김나영의 가족은 2대가 탁구인이다. 아버지 김영진(48) 감독은 한국수자원공사 탁구팀을 지휘한다. 어머니 양미라(51)씨는 한국화장품에서 선수로 활약했다. 탁구 DNA는 금세 꿈틀댔다.
“처음에는 탁구에 대한 욕심이 없었어요. 근데 16강에 가고 8강에 가고 뭔가 아쉽게 지다 보니까 승부욕이 생겨서 ‘좀 더 잘해보고 싶다’ 욕심이 커졌죠.”
김나영은 연습벌레다. 보통 오전 6시40분에 일어나 팀 훈련 1시간 전에 체육관에 도착해서 어머니와 연습한다. 훈련이 끝나고 팀 선배들이 숙소로 이동하면, 엄마와 남아서 그날 잘 안 됐던 것을 연습하고 집에 간다. “진짜 잠자는 시간 빼고는 탁구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탁구를 시작한 뒤로는 감이 떨어질까 제대로 쉬어본 적도 없다. 최근 국제대회를 마치고 4일, 비행기 탑승시간까지 포함해 약 1주일을 쉰 게 가장 길다. “탁구는 감각이 굉장히 중요해서 하루라도 쉬면 다른 게 느껴져요. 그래서 마음 편히는 못 쉬어요.”
잘 못 놀고, 쉬지 못해 아쉽지 않느냐고 묻자 “그냥 ‘탁구는 내 운명이구나’ 받아들인 것 같아요. 여행 가는 것도 정말 좋은데 시간이 없으니 나중에 목표를 다 이루고 가려고요. 금메달을 딴 분들의 어린 시절을 접하면서 ‘뭔가를 이뤄내려면 정말 하나에 미쳐서 해야 하는구나’ 생각했어요. 저도 그걸 이해하고 참아가면서 할 수 있는 거 같아요”라고 답했다.
올 시즌 돋보이는 활약을 펼치고 있지만 김나영은 스스로를 낮췄다. “언니들과 하면 제가 아무래도 덜 부담이 되니까 심리적인 면에서 제게 유리했던 것 같아요.” KTTL 챔피언결정전 활약에 대해서는 “팀 언니들을 믿고 하니 제 기술을 자신 있게 구사할 수 있었어요”라고 공을 돌렸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중국 내 코로나19 등으로 연기돼 아쉬움이 컸지만, 오는 9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메달을 목에 걸기 위해 땀 흘리고 있다. 최종 목표는 올림픽 금메달이다.
김나영은 자신을 향한 탁구계의 기대에 “대선배님들의 뒤를 제가 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주셔서 감사할 뿐이죠. 그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