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전문가들 “서해 피살 공무원 도박중독 판단 불가”

입력 2022-07-15 04:08
서해 피격 공무원 고(故) 이대준씨의 유족과 법률대리인이 지난 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해양경찰이 2020년 9월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가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피살되기 전 도박 중독 상태였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한 결과, 3명 중 2명이 “판단 불가” 의견을 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일보가 14일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실을 통해 단독 입수한 이씨의 사망 전 심리분석 자문 문건에서 확인된 결과다. 앞서 해경이 ‘이씨가 월북했다’는 결론을 내기 위해 충분한 근거 없이 이씨가 도박 중독 상태였다고 발표한 게 아니냐는 주장이 나오기는 했으나 이 같은 의혹이 문건으로 확인된 건 처음이다.

해경은 2020년 10월 22일 이씨 사망 관련 3차 중간수사 결과 발표 때 “도박으로 돈을 탕진한 이씨가 정신적 공황 상태에서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시 해경 내부에서도 근거 자료가 불충분한데 너무 성급하게 발표한 것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해경 정보과는 발표 하루 전인 10월 21일 전문가 7명에게 전화로 이씨의 심리상태에 관한 의견을 청취했다. 이때 1명만 “정신적 공황 상태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을 냈다고 한다.

해경 정보과는 정식 자문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이에 인천해양경찰서는 10월 23일 전문가 3명에게 공문을 보내 이씨의 사망 전 심리상태 진단을 의뢰했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실 제공

전문가 3명이 내놓은 8페이지짜리 심리분석 자문 문건에 따르면 2명은 ‘당사자가 사망한 상태에서 제한된 정보만으로 도박 장애 여부 진단이 어렵다’고 밝혔고, 1명은 ‘고도의 도박 중독 상태’라는 취지의 의견을 냈다. 당시 해경은 도박 중독으로 진단한 1명의 의견만 취했던 것으로 보인다.

판단 불가 의견을 낸 전문가 한 명은 보고서에 “대상자의 심리상태 진단 평가를 위해서는 객관적인 도박 문제 종합평가, 대상자 가족 심층면담 및 전문가의 임상적 경험 등을 근거로 통합적·종합적 판단이 필요하다”면서 “대상자와 가족을 직접 만난 적이 없는 상태에서 제공해준 자료만으로는 도박 문제 진단 평가가 불가하다”고 적었다. 나머지 한 명도 “사건 당사자가 이미 사망해 현재의 심리상태 분석은 가능성에 대한 추정의 수준에 불과하다”며 “복합적인 정보와 자료를 추가로 수집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씨가 도박 중독 상태였다고 판단한 전문가도 “극히 제한적인 분석”이라면서 “현실 도피 목적으로 월북을 선택했다고 단정해선 안 된다”고 보고서에 적었다.

신용일 기자 mrmonst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