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생방송 음악쇼 녹화장을 찾았다. 아이돌 그룹 엔하이픈(ENHYPEN)을 만나러 잠시 들렀는데, 관객들이 입장하는 모습을 보니 낯설게 느껴졌다. 사실 관객 없는 음악쇼는 코로나 시대 이전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지만 지난 2년간 우리는 관객이 없는 무대를 녹화하고, 또 시청자와 팬들은 그에 익숙해져 왔다.
예능프로그램 ‘너의 목소리가 보여’는 실제 녹화장이 더욱 흥미진진하다. 방송 시간은 70분 정도지만 4시간가량의 녹화 시간 동안 100명의 관객이 초대 가수와 함께 추리하다 보면 음치라고 확신했던 출연자의 정체가 밝혀질 때 관객들의 리액션이 과하게 보일 만큼 놀라움이 커진다. 하지만 지난 2년간은 함께 호흡하는 관객도, 아이돌 팬들의 실제 환호 소리도 없는 생방송 음악쇼를 해왔다. 무대는 최신 기술인 증강현실(AR)까지 활용해 예전보다 더 화려해졌지만 관객 없는 무대는 생기가 없어 허전함을 감추기 힘들었다.
엔하이픈이 팬들과 함께하는 무대를 꾸미는 게 신기해 보였다. 전 세계로 온라인 생중계된 방송 프로그램(ILAND, 2020)에서 181개국 시청자들의 투표로 탄생한 아이돌이지만 정작 관객과 팬을 직접 만나보지도 못한 채 코로나 시대에 데뷔한 아이돌. 각종 시상식 신인상을 수상하고 일본 오리콘 차트 1위, 빌보드200 차트 11위를 기록하며 글로벌 아티스트가 되고 있지만 비대면 시대에 탄생한 이들은 실제 관객이 있는 무대에 서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관객 없는 무대처럼 비대면 시대가 당연한 듯 바뀌어버린 우리의 일상. 지난해 미국 매체와 화상 인터뷰를 진행하게 됐다. 화상 만남은 비대면 시대가 보편화시킨 가장 큰 시스템이다. 미국 시간에 맞춰 아침 8시에 열심히 화장한 뒤 예쁘게 보이는 조명과 각도로 꾸민 화면 앞에서 스탠바이를 했다. 그런데 정작 녹화를 시작할 때 연결 프로그램 변경 요청에 당황해서 헤매다가 결국 태블릿으로 기기를 바꾸게 됐다. 태블릿은 카메라가 옆에 있고 비스듬히 세워지다 보니 내 얼굴만 크게 잡히고, 내 콧구멍은 더 크게 나오고 말았다. 아쉽게도 주로 현장을 뛰는 나 같은 경우는 이 간편한 화상 시스템이 영 익숙해지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우리집 안방에 앉아서 미국 매체와 화상으로 인터뷰를 하는 너무 간편한 세상인데도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나서 출근하라고 하니 화를 내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다. 실제로 많은 기업이 재택근무를 해도 생각보다 효율적인 업무 처리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이번 기회로 알게 됐다고 한다.
물론 더 효율적이고 간편할 수는 있겠지만 나는 듣는 사람의 눈을 마주치기 힘든 화상 회의가 별로다. 굳이 리액션에 신경 쓰지 않은 채 내 할 말 하고 들을 말만 들으면 편할 수는 있지만, 나는 화면을 통과하는 이 벽이 너무 차갑게 느껴진다. 코로나 이전에도 언제부터인지 업무를 메일과 메신저 위주로 하는 경향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여기에 코로나 비대면까지 겹치니 이제는 얼굴을 대하고 말하거나 심지어 통화를 하는 일조차도 번거로운 과정처럼 돼가는 듯하다. 중요한 일인데도 통화가 아닌 메시지 하나 달랑 보내고 마는, 통화조차 불편한 단계가 돼버린 걸까.
예전 드라마에서 연인이 이별 통보를 포스트잇으로 했다는 충격적인 에피소드가 있었다. 그런데 요즘에 실제로 이별 통보를 카톡으로 한단다. 휴대폰이 생기면서 우리는 편지쓰기를 그만뒀다. 이메일에 각종 메신저에, 더욱더 편리한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 발전하고 이들이 우리 사이의 물리적 거리를 초월하게 해줬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커뮤니케이션의 온도는 점점 더 차가워지는 것 같다. 거리두기가 끝난 지 이제 겨우 석 달, 다시 맞은 관객들이 반갑고 그들의 환호성에 심장이 뛴다. 눈 마주치고 이야기할 수 있는 동료들과의 식사 자리가 새삼 고마운 지금이다.
이선영 CJ ENM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