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들이 ‘실수 없이 완벽하게’에 매달리는 대신 마음이 이끄는 대로 폭넓고 깊이 있는 공부를 했으면 합니다.” 지난 5일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39) 고등과학원 수학부 석학교수 겸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귀국 후 첫 강연에서 학생들에게 여유 있는 사고를 강조했다.
허 교수는 13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고등과학원에서 강연에 앞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그는 “미국 스탠퍼드대나 프린스턴대에서 다양한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한국 학생들은 좁은 범위를 실수 없이 빠르게 풀어내는 능력은 탁월하지만 넓고 깊게 공부하는 준비가 비교적 덜 돼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 이유로 허 교수는 무조건 ‘더 높은 점수’를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를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항상 경쟁에서 이겨야 하고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고 주문하는 사회문화가 문제”라고 말했다.
교육과정에 유연한 평가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는 견해도 드러냈다. 허 교수는 “저도 학창시절에 수학을 잘해야만 한다는 압박에 오히려 공부하기가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며 “평가의 방향을 유연하게 해서 서로 다른 학생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평가받을 수 있는 환경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학생들에 대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허 교수는 “스스로를 독촉하면 무언가를 순수한 마음으로 좋아하기가 더 힘들어진다”며 “포기할 때는 포기하고 쉴 때는 쉬면서 자신을 꾸준히 바꿔 나가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수학의 묘미에 대해 허 교수는 “어려우면서도 자신이 얼마나 깊게 생각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시험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수포자(수학포기자)’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수학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는 지적에 대해 “순수 수학 연구자들은 수학이 너무 재밌어서 매일 연구를 반복한다”고 소개하며 “다른 사람들이 어째서 매력을 느끼는지 고민해줬으면 좋겠다”고 권했다.
허 교수는 이날 오후 5시부터 같은 장소에서 ‘경계와 관계’를 주제로 수상 기념 강연을 개최했다. 허 교수는 이날 강연을 시작으로 국내 일정을 소화한다. 매년 여름방학마다 국내로 돌아와 고등과학원에서 연구활동을 해온 그는 올해도 고등과학원 겸임교수로 한국에서 여름을 보낼 예정이다.
허 교수가 수상한 필즈상은 국제수학연맹이 4년마다 만 40세 미만 수학자에게 수여하는 수학계 최고 권위의 상이다. 허 교수는 조합 대수기하학을 통해 조합론의 난제를 해결한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계 최초로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