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환경미화원 박성균(46)씨의 일과는 오전 5시에 시작된다. 유동인구가 많은 대로부터 상가가 빼곡한 골목까지 도심 곳곳을 청소하는 박씨의 눈은 땅에서 떨어질 줄 모른다. 하루 8시간, 고개를 숙이고 쓰레기를 쓸어담는 동작을 반복하다 보면 350g 남짓한 안전모가 천근만근으로 느껴진다. “안전모가 가벼울 것 같아도 하루 종일 쓰면 무리가 돼요. 우리는 계속 바닥을 보고 일하니까요.”
박씨 같은 거리 청소 환경미화원들은 목디스크나 무릎 통증, 손목터널증후군 같은 직업병을 흔하게 겪는다. 종로구는 이러한 환경미화원의 고충을 개선하기 위해 지난 12일 신형 경량안전모를 보급했다. 무게는 258g, 기존 안전모보다 100g 정도 가벼워졌다. 바람이 잘 통하도록 통풍 구멍이 큰 것도 특징이다. 안전모 밖으로 열기가 빠져나가지 않아 무더운 여름철에 이중고를 겪는다는 현장 의견을 반영했다.
단지 100g 줄었을 뿐이지만 작업자들이 느끼는 만족감은 훨씬 크다고 했다. 종로구 거리 청소원들은 13일 “확실히 가볍고 통풍이 잘돼 좋다”며 근무 환경이 달라졌다고 전했다. 작업도구 중 하나를 교체한 일이지만 이들은 “가장 필요했던 변화”라고 입을 모았다.
종로구는 환경부가 ‘환경미화원 작업안전 지침서’를 개정한 뒤 거리 청소원에게 경량안전모를 지급한 첫 지방자치단체다. 환경부는 환경미화원 중 ‘가로 청소원’에 대해 경량안전모 착용을 허용하고 있다. 다만 경량안전모 착용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일선 지자체에서는 그간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산업안전보건공단 인증을 받은 350~400g 무게의 안전모를 일괄 지급해 왔다.
환경부 관계자는 “아직 공단 인증을 받은 경량안전모가 없어 지침을 해석하는 데 혼선이 있었다”며 “개정된 지침은 거리 청소원의 경우 미인증 경량안전모도 쓸 수 있도록 명시하고, 교통사고나 추락 등 외부 위험이 없는 현장에선 지자체 판단에 따라 천으로 된 작업모도 쓸 수 있도록 허용했다”고 설명했다.
안전모 개선은 지난 5월 27일 한덕수 국무총리가 종로구 거리 청소 환경미화원을 만나 현장의 어려움을 듣고 약속한 정책이기도 하다. 당시 한 총리는 “산안법에서 업종별 구분을 두거나 면제하는 방안 등을 검토해 (거리 청소원 의견을) 반영해 달라”고 주문했고, 지난달 후속 조치로 환경부의 지침 개정이 이뤄졌다.
종로구 환경미화원 김대성(39)씨는 “오래전부터 고충을 느끼던 부분이었는데 빠르게 개선돼 동료 모두 기뻐했다”며 “현재 지침은 강제성이 없지만 장기적으로 모든 지자체에 적용되는 가로 청소원 관련법안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종로구는 경량안전모를 공원 관리·도로 순찰 직원 등에게도 확대 보급할 계획이다. 정문헌 종로구청장은 “앞으로도 열악한 작업환경과 불합리한 작업방법 등을 현장 근로자들과 머리를 맞대고 해결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