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13일 사상 처음으로 ‘빅스텝’(기준금리 0.5% 포인트 인상)을 단행했다. 가파르게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 초유의 금리 인상 카드를 빼든 것이다. 한은은 하반기 중 두 차례 이상 추가 인상을 예고해 연내 기준금리는 3%대에 근접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41년 만에 최대폭으로 올랐다. 전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압력이 지속되고 있다는 의미다.
한은은 이날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정례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0.5% 포인트 인상한 연 2.25%로 정했다. 금통위원 전원 만장일치 결정이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한번에 0.5% 포인트 이상을 인하한 적은 있지만 0.5% 포인트를 올리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면서 내린 결정”이라며 “물가 안정을 위한 선제적 대응 필요성이 커진 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한은이 4월과 5월에 이어 기준금리를 세 차례 연속 인상한 것은 처음이다. 여기에는 이미 6%대에 진입한 높은 국내 물가 상승세가 꺾이지 않고 있고, 물가가 더 오를 것이라는 인식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 고려됐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와 미국의 긴축 정책도 영향을 미쳤다. 이 총재는 “한은은 당분간 높은 물가 오름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므로 기준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나갈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다”고 말했다. 시장에선 연말 기준금리를 2.75~3.0%로 예상하고 있다는 데 대해선 “합리적 기대”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연말까지 8·10·11월 세 차례 남은 금통위 회의에서 0.25%씩 두 차례 이상 기준금리 인상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총재는 올 3분기 후반부터 물가 상승세가 다소 꺾일 수 있다는 전제를 언급한 뒤 “이 흐름대로 가면 0.25% 포인트씩 점진적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구체적인 금리 인상 폭까지 예고했다.
이 총재는 9월쯤 물가 상승세가 누그러질 수 있다고 보고 있으며 빅스텝 이후엔 점진적인 인상 폭을 유지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공격적인 금리 인상이 경기 둔화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번 빅스텝이 한·미 금리 역전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한·미 기준금리 차는 기존 0~0.25% 포인트에서 0.5~0.75% 포인트로 다소 벌어졌다. 하지만 긴축의 고삐를 죄고 있는 미국이 오는 26~27일(현지시간) 0.75% 포인트 인상을 단행하면, 미 기준금리는 한국보다 0~0.25% 포인트 높아진다. 이 경우 국내 외국인 투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은 커지고 원·달러 환율 상승 압박도 높아진다.
한·미 금리 역전 및 외화자금 유출로 인한 환율시장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한·미 통화스와프 협정 추진이 본격화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전세계적인 인플레이션도 쉽게 꺾이지 않고 있다. 미국 노동부는 6월 CPI가 전년 동월보다 9.1% 올랐다고 이날 밝혔다. 이는 1981년 12월 이후 최대폭이었던 전월(8.6%)보다 상승 폭이 커진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집계한 전문가 전망치 8.8%도 넘어섰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