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겸 가수 유희열의 표절 의혹을 둘러싼 논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유희열이 유사성을 인정하며 사과하고 원곡자는 법적 조치가 필요한 수준은 아니라고 밝혔지만, 불씨가 꺼지지 않는다. 가요계에 고질병처럼 자리 잡은 표절 관행과 결별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문제의 곡은 지난해 9월 나온 앨범 ‘생활음악’의 피아노곡 ‘아주 사적인 밤’이다. 일본 영화음악의 거장으로 세계적 작곡가 사카모토 류이치의 1999년 곡 ‘아쿠아’와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유희열은 지난달 “긴 시간 가장 영향받고 존경하는 뮤지션이기에 무의식중에 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던 유사한 진행 방식으로 곡을 쓰게 됐고 발표 당시 저의 순수 창작물로 생각했지만 두 곡의 유사성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며 “충분히 살피지 못하고 많은 분들에게 실망을 드린 것에 대해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원곡자인 사카모토의 반응은 쿨했다. 그는 유희열의 곡이 표절은 아니라며 “모든 창작물은 기존의 예술에 영향을 받는다. 거기에 자신의 독창성을 5~10% 정도 가미한다면, 그것은 훌륭하고 감사한 일”이라며 사과를 받아들였다. 유희열은 “창작 과정에서 더 깊이 있게 고민하고 면밀히 살피겠다. 치열하게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는 많은 동료 음악인들에게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며 거듭 사과하고 ‘생활음악’ 앨범의 LP와 음원 발매를 취소했다.
이 정도면 아름다운 결말이라 할 법한데 그런 건 없었다. 이런저런 의혹이 나와도 뭉개는 이들과 달리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한 건 바람직했지만 구구절절 경위를 설명한 게 화를 키웠다. 영향까지 받은, 존경하는 뮤지션의 곡이라면 곡조 하나하나를 기억하고 떠올릴 수밖에 없는데 무의식까지 언급한 건 변명처럼 보였다. 표절 의혹이 제기된 부분은 여덟 마디였고 유사한 정도가 아니라 거의 똑같았다. 작곡 과정에선 깜빡했다고 쳐도 발표 후 7~8개월이 흐를 때까지 간파하지 못했다는 것 역시 납득하기 어렵다. 유희열 곡 중에 표절 내지 유사성 시비가 불거진 다른 곡들에 대한 입장 표명이 없었던 점도 반발을 불러왔다. 가요계 표절 논란은 여러 차례 불거졌지만 이번엔 파장이 유독 컸다. K팝 K드라마 K무비 등 K콘텐츠의 위상이 세계적으로 높아졌기 때문이다. 표절 논란도 국내에 한정되지 않고 세계적 스캔들로 비화될 수 있다. 일각에서 K표절이란 신조어까지 만들어낸 건 이런 우려에서다.
표절은 창작자 권리를 침해하고 창작의지를 꺾는다. K콘텐츠 미래를 위해서도 재발 방지책 마련이 시급하다. 문제는 음악저작물의 표절 여부를 가리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소송까지 가지 않는 한 의혹이 있어도 깔아뭉개곤 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관련법과 판례에 따르면 음악저작물에선 실질적으로 표현이 유사한 경우는 물론 전체적인 느낌이 비슷한 경우도 표절로 보고 멜로디를 중심으로 리듬 하모니 등의 요소를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케이스 바이 케이스라고 할 정도로 애매하다. 이를 가리기 위해 일일이 소송을 제기해 법정으로 간다면 비용과 시간, 노력의 낭비가 너무 많다. 음악저작권 관련 단체를 중심으로 관련 기관 등이 참여하는 자율심의기구를 두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이 심의해 표절 여부에 대한 의견이나 권고를 냄으로써 스스로 교정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유희열은 뛰어난 작곡가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에너지를 쏟아붓다 창작의 샘이 마른 것 같다. 도의적 책임을 지고 방송프로그램에서 하차해야 한다는 목소리와 별개로 창작가로서 쉼표가 필요해 보인다.
송세영 문화체육부장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