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하향 안정세는 이제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만큼 분명해졌다. 빅스텝(기준금리 0.5% 포인트 인상)과 함께 부동산 경기 하방의 보폭이 커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그렇다면 집값은 과연 얼마나 내려갈까. 전문가들은 약보합 중심의 내림세가 꽤 길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호가를 중심으로 눈치 싸움을 하면서 ‘거래절벽’ 상황을 이어가는 지금의 흐름을 이어갈 수 있다는 진단이다.
서울 노원구의 한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올해 초에는 급매 위주로만 거래됐는데, 대선 이후로 지난 2개월간은 손님이 거의 없다”고 13일 말했다. 이 공인중개사무소는 거래가 아예 끊겼다. 2011~2012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노원구는 문재인정부 시절에 강한 규제가 풍선효과를 일으킬 때마다 급격한 수요 쏠림을 경험한 곳이다.
노원구의 주요 단지에서는 최근 소형 평형의 급매물은 가격을 최대 1억원까지 낮춰 부르고 있다. 그래도 거래는 뜸하다. 완전히 ‘매수자 위주 시장’이지만, 매도자도 가격을 더 낮출 수는 없는 상황이다. 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실수요자는 높은 대출금리가 문제고, 다주택자는 취득세가 관건”이라고 전했다.
가격을 조금 더 낮춘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금리 인상이 계속되고 있어 자금 조달계획을 세우기 어려운 탓이다. 김인만 김인만부동산경제연구소 대표는 “대출을 받았을 때 대출이자가 얼마나 들어갈지 예상할 수 없다”며 “적어도 올해 안에 집값이 더 오르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으니 매수인 입장에서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분석했다.
이런 줄다리기는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이어지는 역대급 거래절벽의 실체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1~5월 전국의 아파트 매매건수(신고일자 기준)는 15만5987건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31만5153건)과 비교해 반 토막 났다.
거래가 없는데 매물은 꾸준히 는다.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물은 6만5183건(이하 13일 기준)으로 1년 전(4만2594건)보다 53.0% 증가했다. 매물 급감 전인 2020년 7월(7만2023건) 수준에 근접했다. 인천은 2만8016건으로 1년 전 1만2414건의 배를 넘었다. 경기도도 12만5975건으로 전년(6만5538건) 대비 배 가까이 늘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약보합이 길어질 수 있다고 관측한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분수령이 될 9월 전후로 매매와 전세가 모두 안정세를 유지한다면 1, 2년 이상 약보합 중심의 하락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 대표도 “코로나19 사태로 유동성이 늘면서 장기화했던 상승기가 일단락된 것”이라고 했다.
달라진 기류를 수요자들도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부동산 플랫폼 직방이 자사 애플리케이션 접속자 1727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61.9%가 자신이 사는 곳의 집값이 내려간다고 답했다. 이는 지난해 말 집계된 하락 응답 비율(43.4%)보다 커진 수치다.
자연스럽게 정부의 부동산 정책 우선순위도 ‘집값 안정’을 넘어 주거 안정이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 집 마련이 어려워지고, 전세의 월세화가 가팔라지는 상황에 대응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고 원장은 “공공임대주택을 늘려 임대차 시장 안정을 꾀하고 주택바우처 제도 등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택현 기자 alle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