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달이다. 지난달 21일 순수 우리 기술로 개발한 첫 우주발사체 누리호가 발사에 성공하면서 한국은 세계에서 7번째로 무게 1t 이상의 실용급 인공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국가가 됐다. 누리호의 핵심 기술 개발부터 발사 운영까지 총괄한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은 곧이어 대한민국 우주개발 역사에 기록될 또 다른 굵직한 미션을 앞두고 있다. 다음 달 3일 발사되는 한국 최초의 우주탐사선인 달 궤도선 ‘다누리’다. 이상률 항우연 원장은 “다누리까지 성공하면 더 깊은 우주에 대한 눈이 뜨일 것”이라면서도 “이제야 우주 탐사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나아가는 중”이라며 오히려 심기일전하는 모습이었다.
-항우연이 설립되기 전 1986년 천문우주과학연구소 시절부터 한국 우주개발 30여년사를 함께하셨으니 감회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맨땅에 헤딩해서 달까지 가게 됐다’는 소감이 인상 깊었는데요.
“우리 우주개발은 정말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출발했어요. 하겠다는 결심만 있었던 거죠. 87년에 지금의 우주개발 진흥 기본계획과 비슷한 공청회를 했어요. 보고서 앞에 이것은 천문우주과학연구소의 계획이지 국가의 계획이 아니라는 단서를 붙였어요. 그때만 해도 정부가 예산과 시설을 약속할 여건이나 분위기가 전혀 안 됐거든요. 우리가 달에 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못 했고요. 그동안 우리가 정말 빨리 많이 온 거죠.”
-올해가 대한민국 우주 독립의 원년이라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딱 하나 빠진 퍼즐이 독자적인 우주 수송 능력이었습니다. 우리 발사체로 우리 위성을 우주 공간까지 끌고 가는 부분이 비어 있지 않았습니까. 2013년 나로호가 성공했지만 나로호 1단을 러시아에서 들여와 100% 자력으로 거둔 성공이라고 하기에는 아쉬움이 있었죠. 누리호로 모든 아쉬움을 불식시킬 수 있는 결과를 얻었으니 올해가 의미 있는 해임에는 분명합니다.”
-국제 학술지 ‘네이처’가 꼽은 올해 주목할 과학 이슈에 다누리가 언급됐습니다. 작년과 재작년엔 화성 탐사, 민간 우주관광시대 개막 같은 외국의 성공 소식이 쏟아졌는데 올해는 한국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고 봐도 될까요.
“우리가 처음으로 만든 달 궤도선에 실리는 국내 개발 탑재체와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의 특수 카메라 ‘섀도캠’을 비롯해 다른 나라들이 하지 않았던 몇 가지 새로운 시도가 있어서 관심을 받는 것은 확실합니다. 주목받지 못하던 나라가 여기까지 이뤄낸 데다 동시에 발사 능력까지 입증했으니까요.”
다누리는 8월 3일 오전 8시 24분 미국 플로리다 케이프커내버럴 우주군기지에서 미국 스페이스X의 팰컨9 발사체에 실려 달을 향한 여정에 오른다. 지금까지 한국은 여러 차례 위성을 쏘아올렸지만 지구를 벗어난 적은 없다. 우주로 나가는 첫 탐사선인 다누리가 달 궤도에 안착하면 한국은 러시아 미국 중국 인도 유럽연합 일본에 이어 세계 7번째 달 탐사국이 된다.
소형차 크기의 다누리에는 한국 우주 탐사기술이 집약돼 있다. 달 착륙 후보지 탐색, 자기장·감마선 측정 등 달 연구, 우주인터넷 기술 검증 같은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국내에서 개발한 탑재체 5개와 나사의 섀도캠 등 총 6개의 탑재체가 실린다. 항우연이 개발한 고해상도 카메라, 한국천문연구원의 광시야 편광카메라, 경희대의 자기장 측정기,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감마선 분광기,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의 우주인터넷 탑재체 등이다. 나사의 섀도캠은 미국이 주도하는 다국적 유인 달 탐사 프로젝트 ‘아르테미스’를 위한 착륙 후보지를 찾는 데 활용된다.
-우리 힘으로 달에 간다는 게 뿌듯하면서도 한편으로 옛 소련의 달 탐사선이 59년에 발사된 것(루나 1호)이나 아폴로 11호가 69년에 달에 착륙한 것을 떠올리면 격차를 실감하게 되기도 합니다.
“한국의 우주 탐사 수준이 세계 7위이지만 6위인 인도와 격차가 많이 나는 게 사실입니다. 인도는 이미 80년에 자력 발사 능력을 입증했고 2008년에 달 궤도선 찬드라얀 1호를 보냈죠. 2014년에는 화성에도 탐사선을 보냈고요. 우리보다 역사도 훨씬 길고 안정화도 돼 있어서 아직은 차이가 있어요. 겸허하게, 그러나 도전적으로 더 큰 꿈을 꿨으면 합니다. 한국인 특유의 기질이나 능력을 보면 금방 따라잡을 수 있으니까요.”
-섣부른 질문이지만 다누리의 성공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보시나요.
“지금으로선 몇 퍼센트라고 말하기 어려워요. 발사체는 길어도 1시간이면 성공 여부를 알 수 있어요. 다누리는 발사 성공이 전부가 아니라 달 궤도에 올라가 1년 이상 운영되고, 탑재체들이 모두 정상적으로 동작해서 주어진 과학적인 목표를 달성해야 성공인 거예요. 단계마다 하나하나 작은 성공이 쌓여야 되는 거죠. 인도도 2019년 달 착륙선 찬드라얀 2호가 성공적으로 발사되고 달에도 잘 접근했는데 마지막 달 표면에 연착륙을 못했어요. 그럼 실패인 거죠.”
다누리는 발사 후 4개월여 뒤인 12월 16일 달 궤도에 진입한다. 사흘 만에 직선거리로 38만4400㎞를 날아 달에 도착한 아폴로 11호와 달리 우주를 돌아서 600만㎞를 비행하는 ‘탄도형 달 전이 방식(BLT)’ 궤도를 택했기 때문이다. BLT는 이동거리가 길지만 태양과 지구, 달의 중력을 이용하기 때문에 오히려 연료를 25% 절약할 수 있다. 개발 과정에서 다누리의 중량이 증가해 더 많은 연료가 필요해져 이 방식을 택하게 됐다. 항우연이 독자적으로 궤적을 설계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궤적 설계에만 7개월이 걸렸고, 원장님이 BLT를 처음 제안한 수학자를 직접 만나기도 했다고요.
“나사의 에드워드 벨브루노가 87년에 이 아이디어를 냈어요. 일본이 연료 부족으로 달 탐사에 실패한 뒤에 이 이론으로 90년 달 궤도선 히텐을 살려냈죠. 지난달 28일 발사된 미국의 초소형 인공위성 캡스톤도 이 방식으로 달에 갔고요. 다누리가 달 궤도에 도착한 다음 목표 고도인 달 상공 100㎞에 들어서는 게 12월 31일이에요. 모든 게 성공적으로 이뤄지면 다누리가 ‘해피 뉴이어’를 알리면서 23년 1월 1일부터 달을 매일 12바퀴씩 돌며 임무를 수행하게 될 거예요.”
-한국 최초의 달 탐사선을 스페이스X사 로켓에 실어 보내는 게 아쉽습니다. 다누리 이후 달 착륙선 발사 시기가 2030년, 31년 두 가지로 나오던데요, 달 착륙선은 우리 발사체로 가는 거죠?
“달까지 가려면 지금의 누리호보다 더 큰 발사체가 필요해서요. 달 착륙선 시나리오는 현재 두 가지예요. 2018년에 수립한 3차 우주개발 진흥 기본계획에는 2030년 발사로 돼 있습니다. 누리호를 이용하면 700㎏ 정도 되는 좀 작은 착륙선을 보내야 해요. 지금 예비타당성 심사 중인 차세대 발사체를 쓴다고 하면 개발 일정상 2031년이 됩니다. 대신 1800㎏짜리 착륙선을 보낼 수 있어요. 최종 결정은 아직 안 됐고요.”
-우주 강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보완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윤석열 대통령은 우주산업 육성을 위해 나사와 같은 우주청을 만들어 지원하겠다고 했습니다.
“30여년을 되돌아보면 우주개발 계획이 충분한 의견 수렴이나 준비를 통해서 결정되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은 쪽이었어요. 개별 프로젝트에만 집중해 (정부가 바뀔 때마다) 서로 다른 종류의 나무를 잘 키우겠다는 접근이었거든요. 건강한 숲을 만드는 전략을 고민할 때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차세대 발사체 개발을 하면서 위성과 발사체를 통합해 우리 발사체로 우리 모든 위성이나 탐사선을 발사할 수 있도록 해보자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어요. 전체를 크게 보자는 거예요.”
-누리호에 국내 기업 300여곳이 참여했습니다. 민간 주도의 뉴 스페이스(new space) 시대에 우리도 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까요.
“300개 기업이 있다는 건 굉장한 자산이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봅니다. 세계 우주시장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비율이 아직은 0.7%에 불과합니다. 그 0.7%가 거의 다 정부 투자금이고요. 다른 산업처럼 수출을 통해 부가가치를 만들면 정부의 0.7% 투자가 2%가 되고 3%가 될 수 있겠죠. 그렇게 돼야 우주 산업화나 뉴 스페이스가 의미가 있고요. 주춤하고 있는 경제성장의 동력을 우주에서 찾을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이상률 원장은 누구
서울대 항공우주공학과를 나와 프랑스 폴사바티에 대학에서 자동제어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항우연의 1호 우주 엔지니어로 1999년 아리랑 1호부터 한국 인공위성 개발을 이끌었다. 그의 손을 거친 9개의 위성은 모두 성공했고, 16년 전 발사한 아리랑 2호를 비롯해 8개가 여전히 동작하고 있다. 2008년 한국형 달 탐사선 개발 초안을 만들었으며 2019년에는 달탐사사업단장을 맡아 달 궤도선에 새로운 비행궤적을 제시했다. 2021년 항우연 원장에 취임했다.
대전=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hskw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