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방이 관계 회복에 대한 노력 없이 이혼을 거부한다면 결혼생활 파탄의 책임이 있는 배우자라 해도 이혼을 청구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이혼 소송에서 한 차례 패소한 유책 배우자 A씨가 다시 이혼을 청구한 사건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인천가정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13일 밝혔다.
남편 A씨와 아내 B씨는 2010년 3월 결혼하고 그해 12월 딸을 낳았다. A씨는 B씨와 갈등 끝에 2016년 5월 집을 나와 이혼 소송을 냈다. B씨는 이혼에 반대했고, 법원은 “A씨에게 혼인 관계 파탄에 대한 더 큰 책임이 있다”며 이혼 청구를 기각했다.
이후에도 A씨는 별거 상태를 지속했다. 다만 그는 딸 양육비를 지급하고, 아내와 딸이 살고 있는 자신 명의의 아파트 담보 대출금도 갚아왔다. A씨가 아내를 통하지 않고 딸을 만나려고 하자 B씨는 아이를 만나려면 먼저 자신에게 연락하고 집으로 들어올 것을 요구했다. 반면 A씨는 “관계 개선이 먼저”라는 입장을 고수하다 2019년 9월 두 번째 이혼 소송을 냈다. B씨가 이번에도 “이혼 생각이 없다”고 밝히자 가정법원은 A씨의 이혼 청구를 기각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심이 B씨가 혼인 관계를 유지할 의사가 있는지 충분히 살피지 않았다고 봤다. “이혼을 원하지 않는다”는 말뿐 아니라 실제 관계 회복에 힘썼는지 등을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은 “상대방 배우자 역시 종전 소송에서 문제됐던 배우자의 유책성에 대한 비난을 계속하고 장기간 별거가 고착화되는 등 이미 혼인 관계가 와해되는 상태에 이르렀다면 일방 배우자의 유책성은 상당히 희석됐다고 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다만 대법원은 이처럼 예외적으로 유책 배우자의 이혼 청구를 허용할 때는 상대방 배우자의 경제·사회적 상태를 고려해야 한다고 기준을 제시했다. 또 “자녀가 미성년자인 경우 혼인의 유지가 자녀의 복리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측면과 파탄된 혼인 관계 유지가 미칠 부정적 영향을 모두 심리해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임주언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