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간 세 번의 조사… 진상 규명 왜 실패했나

입력 2022-07-14 20:23 수정 2022-07-14 20:24
전남 진도 팽목항에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노란 리본들이 걸려 있다. 그동안 8년여의 시간이 흘렀고 세 번의 특별조사가 진행됐지만 우리 사회가 세월호 참사를 어떻게 정리하고 기억할지에 대한 내러티브를 여전히 만들지 못했다. 국민일보DB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로부터 8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진상 규명을 위해 세 번의 조사위원회가 설치, 운영됐다. 2015년 특조위(세월호특별조사위원회)로 시작해 선조위(세월호선체조사위원회)가 이어졌고 현재 사참위(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가 가동되고 있다.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은 세월호 재난 조사 과정을 돌아보는 책이다. 저자 박상은은 활동가이자 연구자로 세 조사위원회에 모두 참여했다. 특조위에서는 조사관으로, 선조위와 사참위에서는 종합보고서 집필진으로 활동했다. 그는 책에 ‘재난 조사 실패의 기록’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세월호 진상 규명은 왜 실패했는가.’ 그는 이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저자는 먼저 조사위의 실패를 짚는다. 한국 최초의 재난 대상 특별조사위원회인 특조위는 스스로 조사 과제를 설정하기보다 피해자들의 신청을 받아 조사 방향을 마련하겠다는 잘못된 선택을 했고 지지부진함으로 일관하다 강제 종료됐다. “특조위가 성과를 내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은 정부의 방해와 정치적 갈등 그 자체가 아니다. 갈등을 피하겠다는 명분 뒤에 숨어 의제·방향·관점에 대한 토론을 회피한 것이다.” 한 조사위원은 특조위가 ‘중립성의 덫’에 걸려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정부 출범과 함께 시작된 선조위는 세월호 침몰 원인으로 각각 내인설과 외력설을 인정하는 두 개의 양립할 수 없는 보고서를 제출했다. 당시 선조위의 결론은 내인설을 향해 가고 있었다.

“복원성 기준을 어긴 채 항해하던 세월호의 급선회를 촉발한 원인은 검찰이 기소한 조타 실수가 아니라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이다. 전기 신호가 지시한 만큼 타의 각도를 변경하도록 유압을 조절하는 역할을 하는 이 밸브가 고착되면서 본래 5도만 돌리려고 했던 타가 최대 각도인 30도까지 계속 돌아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잠수함 충돌설이나 앵커(닻) 침몰설 등 외력설을 유력한 가설로 보는 외부 분위기와 이를 조사하라는 사회적 압력 속에서 선조위 내 일부 위원들은 외력설을 폐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두 개의 보고서가 나오게 된 것이다.

“선조위 조사관 대부분, 브룩스벨·마린 등 외국의 전문기관은 모두 외력이 아니라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진영론적 사고와 책임의 인격화로 인해 선조위는 내인설의 압도적 우세 속에서도 피해자 가족과 세월호 진상규명 운동에 내인설을 충분히 설득하고 확산시키지 못했다.”

저자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사실들은 대부분 밝혀졌다. 선사, 승무원 등에 대한 사법적 처벌도 이뤄졌다. 그러나 ‘국가 책임’은 밝혀지지 않았고 국가기관 고위층에 대한 처벌도 없었다. 이런 조사 결과는 국가의 책임을 물으려는 피해자 가족과 사회운동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조사위가 밝혀낸 사실들은 사회적 승인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조사를 통해 이미 해명이 되거나 기각된 가설이 계속 되살아났다.

사람들은 이 참사에 국가의 책임이 있다고 여겼다. 그렇지 않다면 정부가 말을 바꾸고 조사를 방해하고 진상 규명 활동을 탄압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인력과 시간을 충분히 들여 제대로 조사한다면 국가 책임이 입증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그것만이 조사의 성패를 결정짓는 기준인 것처럼 여겼다.

하지만 ‘국가 책임’은 운동의 프레임이 될 수는 있겠지만 재난 조사의 목표가 되기엔 어렵다. 특히 세월호 참사는 ‘국가의 조직적 무책임성’ 혹은 ‘부작위에 의한 국가 폭력’에 가까운 재난이었다. 이는 ‘의도에 의한 국가 폭력’과 다른 것이지만 사람들은 그 차이를 구분하지 않았다. 국가의 책임을 물으려는 의지는 강했지만 거기서 ‘국가’는 구체적으로 무엇이고, ‘책임’은 어디까지인지 모호했다. 조사위는 이를 설명하고 대중들을 설득해야 했지만 실패했다.

세월호 조사는 참사의 구조적 원인을 규명하지 못했다는 점에서도 실패했다. 진상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중심이 되면서 구조적 조사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저자는 재난 조사의 목적은 개인 책임을 묻기 위한 사법적 조사와 다르고 구조적 조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해외의 재난 조사 사례를 광범위하게 보여준다.

일본 국회사고조사위원회는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인재라는 점을 명확히 했으며 ‘규제 포획’을 주요 원인으로 짚었다. 규제 포획이란 규제 기관이 규제 대상인 기업에 포획돼 기업의 이익을 보호하는 정책을 펴는 현상을 말한다. 미국 9·11 테러에 관한 국가위원회를 이끈 토머스 케인 위원장은 보고서 서문에서 “목표는 특정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이 아니”라 “9·11을 둘러싼 사건들의 전말을 밝히고 얻은 교훈을 가려내는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8년간 세 차례 이뤄진 세월호 재난 조사의 성과는 앙상해 보인다. 그렇다고 재난 조사가 불필요했던 건 아니다. 거대한 비극 앞에서 시민들은 피해자 가족들과 연대해 재난에 대한 특별조사의 길을 열었다. 저자는 개인 처벌에만 그치지 않고 사회 시스템을 바꾸기 위한 재난조사란 어떻게 가능한가, 권력을 가진 이들을 면제하지도, 우리 자신을 면제하지도 않는 사회적 책임의 방식은 무엇인가 등을 고민하자고 제안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