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계에서는 한국 경제가 ‘디지털’로 체질을 바꾸고 있어 기업들이 점차 재택·사무실 근무를 적절히 배합하는 식으로 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본다. 인재 확보를 위해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보여줄 수밖에 없어서다. 재계 관계자는 “근무형태를 다양화할 수 있는 기업만이 기술력 등의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고, 장기적인 성장 가능성이 있는 곳이라는 인식이 커졌다. 변화를 보일 수 없는 기업들이 시장에서 도태되는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13일 말했다.
특히 코로나19 엔데믹 시대로 접어들면서 기업들은 일찌감치 업무 환경 변화에 시동을 걸었다. 네이버와 카카오, 라인플러스가 원격근무 형태를 도입한 게 ‘도화선’이다. 네이버는 완전 재택근무로의 전환을 선언했다. 네이버는 R타입, O타입 중 하나를 고르는 ‘커넥티드 워크’ 제도를 지난달 4일부터 시행 중이다.
R타입은 주 5일 내내 원격근무를 하는 방식이다. R타입을 선택한 직원은 집을 포함해 카페, 휴양지 숙소를 포함해 원하는 곳에서 원격으로 근무할 수 있다. O타입은 3일 이상 회사로 출근하는 형태다. 직원들은 6개월마다 개인 사정이나 진행하는 프로젝트 상황 등을 고려해 두 가지 근무 형태 중 하나를 고른다.
카카오는 상시 원격근무 체제다. 자신이 선택한 장소에서 자유롭게 근무한다.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올 체크인 타임’으로 정해 일종의 집중근무를 한다. 카카오는 온라인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업무를 보완할 수 있도록 부서원들의 주 1회 오프라인 만남, 음성 채널 활용을 권장하고 있다.
NHN은 다음 달부터 임직원 개개인의 근무 자율성을 극대화한 새 근무제도를 시행한다. 새 근무제도는 사무실 기반 근무에 원격근무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방식이다. NHN은 집중근무 시간(11시~16시)으로 운영했던 코어타임 제도를 폐지했다. 대신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 사이에 최소 근무시간 제한 없이 본인 여건에 맞춰 자유롭게 업무시간을 설정하도록 했다. 한 주에 10시간씩 4일을 근무하면 하루는 오프데이로 지정해 종일 쉴 수 있는 제도도 도입했다. 원격근무 체제도 병행한다. 매주 금요일은 원하는 곳 어디에서나 근무할 수 있다.
근무형태 변화는 일종의 ‘사내 복지’로도 여겨진다. SK텔레콤과 KT는 지역별 거점 오피스를 운영하며 출퇴근 압박을 줄였다. LG에너지솔루션도 지난 3월부터 서울 반포, 서초, 홍대, 광화문, 경기도 고양시 일산 등의 수도권 23곳에 거점 오피스를 운영 중이다. 직방은 지난해 2월 오프라인 사무실을 없애고 전면 원격근무를 도입했다.
그러나, 새로운 근무 방식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비용, 지속 가능성 등과 관계없이 새 근무 방식을 제시해야만 하는 분위기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대표적 분야가 게임 업계다. 수백명의 개발 인력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움직여야만 하는데, 원격·재택근무 방식으로는 개발 속도나 완성도에 한계가 있다. 결국 국내 대표 게임사인 넥슨과 엔씨소프트, 넷마블은 코로나19 사태 이전처럼 전 직원의 전면 출근을 선택했다. 한 게임업계 관계자는 “실적 악화 우려 때문에 인력을 집중적으로 투입해 단기 성과를 내야 하는데, 출근을 시켰다고 변화 흐름을 놓친 기업이라고 보는 인식은 부담”이라고 말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