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현의 티 테이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입력 2022-07-16 04:02

여러 나라 해안에서 고래나 물개 등의 해양 동물이 갑작스레 해안으로 올라와 죽는 스트랜딩(stranding·좌초) 현상에 대한 뉴스를 종종 접한다. 2년 전에도 호주 해안에 270여 마리의 고래가 좌초돼 최소 90마리가 죽었다. 이런 현상을 두고 전문가들의 해석은 분분하다. 먹이를 쫓거나 적한테 쫓기다 해류에 밀려온 것이라는 주장, 바다 오염이나 먹이 고갈 등 생태계 환경 변화 때문이라는 분석, 선박이나 잠수함에서 나오는 소음과 초음파가 방향 감각을 잃게 한다는 추정까지 다양하다.

이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것은 특수한 저주파로 서로에게 연락하는 고래가 바다를 뒤덮은 온갖 배들의 엔진 소리 때문에 친구, 가족들과 교신이 단절됐다는 부분이다. 무리와의 교신이 단절돼 고독해진 그들은 삶의 의욕마저 잃고 해안가로 밀려와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인류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모든 관계가 단절되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따뜻한 정을 느끼지 못하면, 사람들도 거대한 바다의 고래처럼 해안선 밖으로 헤엄쳐 나오게 될지도 모른다는 신호가 아닐까.

경제 위기가 반복될 때마다 우리 사회에 타전되는 시그널들이 있었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 2019년 탈북 모자 사건, 2020년 방배동 모자 사건, 그리고 얼마 전엔 실종됐다가 바닷속 차 안에서 숨진 상태로 발견된 ‘조유나양 가족 사건’ 등. 상황은 다르지만 비통한 사건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여기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복지 대상이었지만 교회나 지역사회에서 도움을 받지 못했고, 아무도 비극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했다. 또 철저하게 고립된 생활을 이어가 구조의 손길이 닿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장 가슴 아픈 대목은 고민을 털어놓을 대상이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이다. 사회적 외톨이였던 것이다. 누군가 한 사람에게라도 아픔을 토로할 수 있었다면, “너는 가치가 있으며 너를 아끼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단 한 명이라도 있었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온갖 역경 속에서도 결코 좌절하지 않고 꿋꿋하게 성장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인생에 있어 누군가 한 사람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땐 외부 도움 없이 스스로 극복하기는 너무나 어렵다. 고난을 겪는 사람에게 누군가 한 사람이 필요하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서 동훈(이선균)이 사채 독촉과 온갖 협박에 시달리며 병든 할머니를 부양하는 소녀 가장 지안(이지은)에게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삶이 지옥이었던 지안이 세상 밖으로 나와 새 삶을 살게 된 것은 누군가 한 사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현실은 다를 수 있다. 주위에 도와줄 사람이 한 명도 없을 수 있다. 지독한 고독이 몰려올지도 모른다. 그래도 버티고 살아야 한다. 벼랑 끝에 서 있는 것 같아도, 사는 곳이 지옥 같아도, 세상에 내 편이 한 명도 없는 것 같아도 살아 있어야 한다. 자신이 치매에 걸려 가족을 힘들게 하는 존재가 돼도, 가상화폐와 주식 폭락으로 가진 것을 다 잃어도, 질병으로 육체적 고통 속에 있어도 나를 지켜야 한다.

우리의 삶 속에는 내가 생명을 포기하지 않도록 돌보는 하나님의 애틋한 손길이 있다. 우리가 의식했든, 의식하지 못했든 하나님은 우리가 힘들 때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고 말씀하신다. 에스겔 선지자는 바벨론 시대에 태어나자마자 피투성이인 채로 버려지는 아기들을 이스라엘 백성에 비유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대언했다. “내가 네 곁으로 지나갈 때에 네가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겔 16:6) 하나님이 이 시대에 주는 시그널은 ‘살아 있으라’는 것이다.

사랑과 자비와 연민이 있는 곳이 바로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이다. 온 인류가 서로 사랑해야 함은 그곳에 하나님이 사시기 때문이다. 18세기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 시로 위로를 전하고 싶다. “당신이 한숨 쉬는데, 당신을 만든 분이 곁에 없으리라 생각하지 마세요. 당신이 눈물을 흘리는데, 당신을 만든 분이 가까이 없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오! 그분이 우리에게 자신의 기쁨을 주시어 우리의 슬픔을 파괴하시나니. 우리의 슬픔이 달아나 사라질 때까지 그분이 우리 곁에 앉아 슬퍼하시나니.”(‘타인의 슬픔에 대하여’ 중)


이지현 종교부 선임기자 겸 논설위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