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걱정없고 가성비 좋은 원전… 핵폐기물 처리 ‘난제’

입력 2022-07-13 04:04

지난 6일 유럽연합(EU) 의회는 원자력발전을 ‘그린 택소노미(Taxonomy)’에 포함하는 방안을 의회에서 의결했다. 그린 택소노미는 탄소 중립이나 친환경으로 분류되는 범주를 말한다. 그린 택소노미로 분류되면 원전 관련 기술이 친환경 기술로 취급돼 투자를 받기가 더 수월해진다. EU 의회의 결정은 원전을 온실가스 발생량이 적으면서도 안정적인 전력 공급이 가능한 에너지로 인정했다는 의미가 있다.

EU 내에서 그린 택소노미 관련 논의를 시작할 때만 해도 원전을 이에 포함하는 데 반대 의견이 적지 않았다. 원전이 인간과 환경에 치명적인 핵폐기물을 배출한다는 점 때문이었다. 그러나 온실가스 배출 감축이 글로벌 지상 과제로 부상하면서 ‘가성비’ 좋고 온실가스 배출량이 적은 에너지원으로서 원전을 배제하기 어렵다는 현실론이 고개를 들었다. 특히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러시아 의존도가 높은 화석연료에서 탈피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는 모양새다. 다만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불안이나 사용후핵연료 처리 등 해결해야 할 난제도 많다.

의외로 친환경 에너지 원전


지난해 10월 유엔유럽경제위원회(UNECE)가 발표한 ‘발전원별 전주기 환경영향평가’에 따르면 원전은 전체 22개 발전원 가운데 ㎾h(킬로와트시)당 온실가스 배출량 측면에서 가장 친환경적 에너지다. 원전의 발전량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은 ㎾h당 5.1g에 불과하다. 수력(360MW 기준·11g)이나 풍력(12~14g), 태양광(11~37g), 태양열(22~42g) 등 재생에너지보다 온실가스 배출이 적다.

전력을 생산하는 데 필요한 토지점유율도 ㎾h당 0.058포인트로, 풍력(0.11포인트), 지붕 위 태양광(0.15~0.86포인트), 수력(0.21포인트), 천연가스(0.24포인트)보다 낮다고 조사됐다. 부지에 비해 많은 전력을 생산할 수 있어 경제적이라는 의미다.


원전은 전력 생산에 들어가는 설비용량 대비 효율도 높다. 한국전력의 전력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발전 설비용량 중 원자력 비중은 17.4%로 신재생에너지(18.5%)보다 적었지만, 원자력의 발전량은 전체 발전량의 27.4%로 신재생 발전량(7.5%)의 3.7배였다. 부경진 서울대 공과대학 객원교수는 12일 “궁극적으로 신재생에너지 확대로 가야 한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에너지는 현실이므로 재생에너지만 갖고는 안 된다. 원전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지난달 말 발표한 보고서에서 2020년 기준 415GW 수준인 전 세계의 원전 발전설비량이 2050년에는 812GW로 2배가량 늘 것으로 전망했다. 정부도 2030년까지 전체 발전에서 원전 비중을 30% 이상으로 확대하기로 공식화했다.

끊이지 않는 불안, 그리고 핵폐기물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원전에는 방사성 물질 노출에 대한 불안이 끊임없이 따라다닌다. 원전은 원자로 안에 우라늄을 투입하고 핵분열을 유도해 여기서 나온 열에너지를 발전 기제로 삼는데, 핵분열 연쇄 과정에서 많은 방사성 물질이 생산된다. 원전이 정상 가동될 때에는 이 방사성 물질들이 원자로 밖으로 나올 수 없다.

하지만 예기치 않은 재난 상황이 발생하면 대규모 방사능 유출 가능성이 있다. 발전소뿐 아니라 주변 지역과 생태계에까지 회복하기 힘든 피해를 줄 수 있다. 1978년 고리원전 1호기 가동으로 원자력 발전이 시작된 이후 44년간 방사능 유출 사고가 없었음에도 문재인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폈던 것은 이런 불안감에서 비롯됐다.

전문가들은 “원전에 대한 불안감이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을 역임한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원전이 위험하니까 쓰지 말자는 주장은 교통사고가 위험하니 자동차를 몰지 말고 자전거 타고 다니자는 말과 똑같다. 자동차 사고를 줄이기 위해 과속 단속을 하고 안전벨트 의무화 등 위험을 관리하듯 원전도 위험을 관리하면서 운용하면 된다”고 말했다.

원전 가동으로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도 당면 과제다. 경수로형 원전의 경우 4~5년, 중수로형 원전은 약 10개월 정도 주기로 발전에 들어간 핵연료를 교체해줘야 한다. 사용후핵연료는 열이 많고 방사능이 계속 나와 그냥 폐기하지 못하고 원전 내 임시저장 시설에 별도로 저장·관리해야 한다.


문제는 이런 사용후핵연료가 쌓여가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31년 한빛원전을 시작으로 사용후핵연료를 더는 원전부지 내에 보관할 수 없는 ‘포화’ 상태의 원전이 줄줄이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포화율이 이미 98%를 넘긴 월성원전은 급한 대로 임시저장시설(맥스터)을 지난해 추가 완공하면서 2029년까지는 사용후핵연료 등을 저장할 수 있게 됐다. 그렇지만 영구처리시설 마련 작업은 이제 시작 단계다.

핀란드, 스웨덴은 이미 지하 500~1000m 깊이 심지층에 사용후핵연료 등 폐기물을 매립하는 영구처리시설 건설에 착수했다. 한국은 근거법조차 통과되지 않은 실정이다. 정부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되는 대로 국무총리 산하의 관리위원회를 만들고 이해관계자 의견 수렴 등을 거쳐 영구저장시설 부지를 선정한다는 방침이다. 37년 이내에 영구처리시설을 만든다는 목표만 제시한 상태다. 대상지로 거론되는 원전 주변 지역의 거센 반발로 타협점을 찾기 쉽지 않을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