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은 12일 유로화 급락과 중국의 봉쇄 조치 등 영향으로 장중 한때 1316.4원으로 급등했다. 1300원은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진다. 과거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2001년 닷컴 버블 붕괴,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한국 경제가 심각한 위기에 빠질 때마다 원·달러 환율은 1300원 이상 치솟았다.
지금도 1300원을 넘었지만 과거 금융위기 수준의 치명상을 입을 정도는 아니라는 평가가 많다. 하지만 올해 연말까지도 고물가, 고환율 등 불안정성이 해소되지 못할 경우 장기적 경기 침체 늪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당장 환율이라는 급한 불을 끄기도 쉽지 않은 모습이다. 외환보유고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고 당국의 구두개입은 시장에 먹혀들지 않고 있다. 정부는 환율시장 안정을 포함해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여러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당장 눈에 띄는 효과를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
일반적으로는 환율 상승은 수출 증가로 이어질 수 있지만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박이 커진 현재로선 수입물가를 낮추는 게 더 급한 상황이다. 게다가 외환시장 변동성 확대는 산업 전반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환율 급등은 기업의 불확실성을 증폭시키기 때문이다. 기업들이 채산성 악화를 피하기 위해 수출 물량 자체를 줄이거나 기계류 수입 가격 상승에 따라 설비 투자도 크게 줄일 수 있다.
최근 무역 적자가 누적되는 상황 역시 환율 상승 영향이 컸다. 지난 1~6월 무역 적자는 103억 달러를 기록했다. 원·달러 환율 상승에 수입 원자재 가격이 높아지면서 수출 증가율보다 수입 증가율이 커진 탓이다.
더욱이 다른 신흥국에 비해 자본시장 개방 수준이 높은 한국에선 환율 쇼크가 예상 밖으로 확대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국내에 있던 외국인 투자금이 급속도로 빠져나갈 수 있다는 얘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외국인의 국내 주식 투자자금은 5개월째 계속 유출되고 있다. 지난달 외국인의 국내 주식 투자자금은 30억1000만 달러가 빠져나갔다.
당분간 외국인의 국내 주식 투자자금 유출은 지속될 전망이다. 강달러 현상뿐 아니라 유럽의 에너지 위기, 국내 코로나19 재확산 상황,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 등을 앞두고 국내 금융시장에선 투자심리가 크게 위축되는 모양새다.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날보다 22.51포인트(0.96%) 내린 2317.76에 거래를 마쳤다. 코스닥지수도 16.26포인트(2.12%) 떨어진 750.78에 장을 마쳤다.
금융권에서는 외환시장 변동성을 낮추려면 한·미 통화스와프협정을 다시 체결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한·미 통화스와프는 지난해 말 종료된 후 협정 재추진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는 상태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