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트윈터널, 폭염도 쉬어가는 터널 속 빛의 황홀경

입력 2022-07-13 21:31 수정 2022-07-14 17:24
경남 밀양시 삼랑진 경부선 폐터널을 재탄생시킨 ‘트윈터널’이 1억 개의 LED 빛으로 화려함을 자랑하고 있다. 더위를 피할 수 있고 볼거리와 체험거리가 가득해 가족, 연인 등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큰 수고를 들이지 않으면서 더위를 피하고 신비로운 빛의 세계를 즐기는 이색 명소가 있다. 밀양시 삼랑진에 있는 트윈터널이다. 특별한 볼거리와 체험 거리가 다양해 가족 여행지로 인기를 모은다. 사진 찍기 좋은 포인트가 많아 연인들에게도 사랑받는다.

트윈터널은 옛 경부선 무월산(無月山)터널을 활용한 테마파크다. 일본은 일제강점기 때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곡식을 비롯해 각종 광물을 원활하게 실어 나르기 위해 전국에 기찻길을 만들었고, 밀양에도 1902년 경부선 철도를 놓았다. 하행터널은 이때 만들어졌다. 상행터널은 부산항으로 물자수송이 늘어나자 또 다른 터널을 만들어 1940년 개통한다. 이 터널은 ‘달이 없는 곳’이라는 지명에 따라 무월산터널이라 불렸다.

기차가 바쁘게 오갔을 두 터널은 2004년 KTX 운행을 위한 새로운 노선이 생기면서 동시에 이용이 중단됐다. 13년여간 폐터널로 역사의 뒤안길에 묻혔던 두 터널은 2017년 하나로 연결돼 반짝이는 빛의 터널로 거듭났다. 상행 457m, 하행 443m 터널을 이은 형태도 독특하다. 두 터널의 쌍둥이 같은 모습에 트윈터널이란 이름이 붙었다. 트윈터널은 세간에 떠도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은 빛의 파노라마 세계다.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한 바퀴를 돌아 나오면 산책코스로 적당한 1㎞를 걷게 된다.

두 개의 터널 중 오른쪽이 입구다. 블랙홀로 빠져들 것 같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가림막을 제치고 들어가면 밖에서 볼 때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맞이한다. 1억개의 알록달록 LED 별빛이 벽면과 천장을 가득 메운다. 형형색색 전구가 밤하늘을 수놓은 별처럼 빛난다. 별빛이 흐르는 은하수를 건너면 이런 기분일까. 터널 위에는 둥근 행성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조형물이 우주 속으로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어른이나 아이 할 것 없이 빛의 황홀경에 빠져든다.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포토 존이다.

이어 아쿠아빌리지의 세상이 열린다. 긴 수족관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고기들이 담겨 있어 해저터널 속에 들어온 듯하다. 상행터널의 끝은 아쿠아캐슬이다. 막다른 터널은 옆 하행터널과 연결해 유턴하게 돼 있다.

포토피아의 문을 열면 황금보리밭 사잇길을 걷는 듯한 불빛 쇼가 펼쳐진다. 터널 천장에는 알록달록한 무지개 우산이 시선을 이끈다. 벽면에는 하트 모양의 종이에 사랑의 맹세나 가족의 건강을 기원하는 글이 빼곡하다.

터널 내부는 연중 15~19도를 유지한다. 한여름에도 얇은 겉옷이 필요할 만큼 서늘하다. 밖은 가만히 서 있어도 땀이 송골송골 맺히지만, 터널 안에 들어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 더위가 싹 사라진다. 순식간에 여름을 뛰어넘은 기분이다.

과거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던 삼랑진역 급수탑.

저물어간 철도의 역사(歷史)는 주변에도 남아 있다. 삼랑진읍 송지리에 자리한 삼랑진역은 광주송정역까지 이어지는 경전선 철도 시발역이다. 1905년 1월 1일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했다. 경부선 철도도 지나고 있어 세 선로가 Y자 모양으로 연결된다. 옛날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던 삼랑진역 급수탑이 철도 중심지의 역사를 대변한다. 1923년 세운 커다란 통조림 모양의 급수탑을 담쟁이덩굴이 덮고 있다. 돌에서 철근 콘크리트로 이행하는 건축 재료의 변천사뿐 아니라 역사의 이해와 근대 교통사 연구의 주요 유산으로 인정받고 있다.

역사(驛舍) 뒤편 도로변에 포토존이 설치돼 있어 역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현재의 역사는 1900년대에 지은 목조건물을 헐고 99년 새로 지은 것이다. 네 개의 기둥 사이에 전면 유리로 된 외양이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닮았다.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옛 삼랑진교.

가까운 곳에 하부마을이 있다. 하부마을의 왼편 끄트머리에서 김해 생림면의 마산포를 연결하는 다리는 1905년 개통된 경전선 ‘삼랑진교’다. 이 다리는 1962년 말까지 사용됐고 이후 차도로 이용되고 있다. 다리 너비가 4.3m에 불과해 차량 두 대가 몸을 사리며 겨우 지나갈 수 있다. 일정량을 넘기는 무게와 높이의 차량은 출입이 금지돼 있다. ‘낙동강 인도교’ 또는 ‘삼랑진 콰이강의 다리’라고 불린다.

삼랑진교의 바통을 이어받은 다리는 ‘낙동강 철교’다. 하부구조는 1938년 9월 착공해 40년 4월 준공됐지만 상부구조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착공하지 못했다. 48년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후 50년에 착공했지만 6·25전쟁으로 중단됐다. 국군이 50년 8월 인민군 도하를 막기 위해 철교를 파괴해버려 1962년에야 완공했다. 일제강점기부터 광복 이후까지 공사가 진행돼 철교의 하부는 일본인이, 상부는 미군이 지었다고 한다. 지금은 김해 레일바이크로 이용된다.

밀양=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