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레스토랑 시위

입력 2022-07-13 04:10

“웨이터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제보가 사실로 확인되면 50달러, 우리가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제보 내용이 유지되면 200달러를 드립니다.” 얼마 전 미국 워싱턴의 레스토랑 웨이터들을 향해 이런 메시지가 트위터에 올라왔다. 시민단체가 올린 것인데, 그들이 원한 제보는 연방대법관이 밥 먹는 현장이었다. 대법관 9명 중 브렛 캐버노, 새뮤얼 얼리토 등 6명을 콕 찍었다. 낙태권을 보장하던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은 판사들이다. 이들이 레스토랑에 식사하러 온 것을 보고 웨이터가 제보 문자를 보내면 이 단체는 시위대를 급파한다. 도착했을 때 다 먹고 떠난 뒤라면 50달러, 여전히 먹고 있으면 200달러.

지난주에 날아든 제보는 캐버노 대법관이 모턴스란 식당에 있다는 것이었다. 35분 만에 시위대가 들이닥쳐 캐버노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쳤다. 대법관은 스테이크를 먹다 말고 뒷문을 통해 빠져나가야 했다. 낙태할 권리를 가로막은 이들에게 밥 먹을 권리를 허락하지 않겠다는 시위 방식은 여성 코미디언 사만다 비의 방송 멘트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의 쇼에서 “그들이 우리의 삶을 지옥으로 만들었으니 그대로 돌려주자. 여섯 대법관이 밥 처먹는 워싱턴의 모든 식당을 지옥으로 만들어주자”고 했다.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겠지만, 미국 진보 진영은 시위 무대로 레스토랑을 자주 택해 왔다. 트럼프 정권에서 유독 많았다. 2018년 캐버노의 성폭력 의혹이 불거졌을 때, 그를 옹호하던 테드 크루즈 공화당 상원의원은 부인과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갔다가 시위대의 급습에 부엌으로 대피해야 했다. 트럼프의 각료와 참모 여럿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보수파 대법관의 밥상이 공격당하자 보수매체 폭스뉴스 앵커 터커 칼슨은 방송에서 “레스토랑 시위 단체의 제보 문자함을 허위 제보로 가득 채우자”고 제안했다. 그 단체는 “그런다고 포기할 것 같니?” 하는 트윗을 다시 올렸다. 낙태권을 놓고 양분된 미국. 요즘 워싱턴 식당가에선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태원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