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함장(函丈)의 거리두기

입력 2022-07-13 04:03

함장은 ‘예기’ 곡례편에 나오는 말이다. ‘함’은 사물함, 보석함의 함이다. 물건을 담는다는 뜻이다. ‘장’은 길이 단위다. 우리말로 ‘길’이라고 한다. 지팡이를 의미하는 장(杖)과 같은 뜻으로 쓰기도 한다. 다시 말해 함장은 지팡이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간격이라는 뜻이다. 이것이 변해 지팡이 하나 간격을 두고 마주앉아 가르치는 사람, 즉 스승의 별칭으로 자리잡았다.

함장은 중국에서 유래한 단어다. 원래 중국은 두 사람이 마주앉는 법이 없다. 중국 사극에서 보듯 주인과 손님은 같은 방향으로 나란히 놓인 의자에 앉아 고개만 옆으로 돌려 이야기를 나눈다. 국가 간 정상회담을 연상케 하는 좌석 배치다. 두 사람이 마주앉는 경우는 스승과 제자가 수업할 때뿐이다.

스승이 제자를 가르칠 때는 지팡이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간격을 둬야 한다. 그래야 제자가 스승에게 절도 할 수 있고, 책 놓을 자리도 생기고, 교편으로 책을 짚어가며 가르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스승과 제자 사이의 간격이 너무 넓으면 곤란하다. 수업은 스승과 제자의 상호작용이다. 거리가 멀면 상호작용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간격이 너무 좁아도 안 된다. 우선 제자가 부담스럽다. 교탁 바로 앞자리에 앉아봤으면 알 것이다. 요즘 같은 시국에 침이라도 튀면 곤란하다. 스승 입장에서도 제자가 너무 가까이 있으면 좋지 않다.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제자가 답답한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손찌검이라도 했다간 큰일이다. 그러니 손이 닿지 않을 정도로 간격을 둬야 한다. 지팡이 하나 들어갈 정도가 가장 좋다.

함장이 사제 간의 합리적 간격이라는 점은 과학적으로 입증 가능하다. 미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사람과 사람 간의 거리를 넷으로 나눴다. 첫째는 ‘친밀한 거리’로 46㎝ 이하다. 가족과 연인에게만 허용하는 거리다. 둘째는 ‘개인적 거리’로 46㎝에서 1.2m 사이다. 친구나 동료와의 거리다. 셋째는 ‘사회적 거리’로 1.2m에서 3.6m 사이다. 사무적 관계로 만나는 사람과의 거리다. 넷째는 ‘공적 거리’로 3.6m에서 7.6m 사이다. 배우와 관객 또는 연사와 청중 사이의 거리다.

각각의 문화권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는 하지만 사람은 타인과 일정한 거리를 둬야 편안함을 느낀다. 그 거리는 친밀도에 따라 달라진다. 가족과 친구는 가까이 있어도 괜찮지만 낯선 사람이 다가오면 불편하고 긴장된다. 인간의 본능이다. 스승과 제자는 친구처럼 가깝지는 않아도 타인처럼 멀지는 않다. 함장은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적당한 거리의 상징이다.

코로나로 인한 지난 2년간의 거리두기는 낯선 사람은 물론 친밀한 사람까지 ‘사회적 거리’ 밖으로 밀어냈다. 그 경험을 통해 우리는 얼굴을 마주하는 만남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았다. 한편으로는 우리 일상에 불필요한 만남과 이동이 얼마나 많았는지도 돌아보게 됐다. 대면 수업이 아니라도 학교는 그럭저럭 돌아갔고, 재택 근무를 한다고 회사가 망하지도 않았다. 얼굴을 마주하는 회식과 회의가 꼭 필요한 것도 아니었다. 타인과 어느 정도 거리를 둬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경험으로 알게 됐다.

거리두기가 해제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재유행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학교를 비롯한 집단시설은 감염병 전파의 온상으로 지목되는 만큼 걱정이 많다. 그렇다고 예전처럼 강도 높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회귀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국민의 불편과 피해가 만만치 않아서다. 불필요한 만남과 이동을 자제하는 자발적 거리두기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함장의 거리두기를 실천할 때다.

장유승(단국대 연구교수·동양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