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3월 열린우리당 김영춘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유시민 의원을 비판하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저렇게 옳은 소리를 저토록 싸가지 없이 말하는 재주는 어디서 배웠을까”였다.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싸가지 없는 정치인’ 대표선수로 등장하는 순간이었다. 김 의원은 나중에 발언을 사과했고, 유 전 이사장은 2006년 보건복지부 장관 청문회부터 점잖은 모습을 보이며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다. ‘싸가지론’은 한동안 더불어민주당의 아킬레스건이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3년 회고록 ‘1219 끝이 시작이다’에서 “우리가 이른바 ‘싸가지 없는 진보’를 자초한 것이 아닌가 겸허한 반성이 필요한 때”라고 적었다. 강준만 교수는 2014년 저서 ‘싸가지 없는 진보’에서 “싸가지 문제는 민주당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의 알파이자 오메가”라고 지적했다. 민주당은 10년 이상 싸가지 프레임에 시달렸다.
진보 쪽에서 유행하던 싸가지론이 보수 쪽으로 넘어왔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중심에 서 있다. 이 대표는 지난해 보수정당 최초로 30대 대표로 선출되며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이 대표의 거친 표현과 돌출 행동이 계속되자 기대는 우려로 바뀌었다. 이 대표는 지난달 정진석 국회 부의장과의 설전 도중 “가만히 있으면 더 흔들고, 흔들고 반응하면 싸가지 없다고 그러고”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싸가지는 다른 사람에 대한 예의나 배려를 의미하는 방언이다. 치열한 토론 과정에서 “싸가지 없다”고 비판받는 사람은 억울할 수 있다. 내용에 대한 반박이 아니라 태도나 자세에 대한 비난이기 때문이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윽박지를 때 주로 사용하는 위계적 언어이기도 하다. 그러나 정치권에서 싸가지론은 위력을 발휘한다. 정치에서는 설득의 내용 못지않게 설득의 태도와 자세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당원권 정지로 정치적 위기에 처했다. 이번 위기가 ‘싸가지 없는 보수’라는 틀을 깨고 ‘품격 있는 보수’의 정치인으로 성장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남도영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