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위기를 맞기도 하고 낯선 여행길에 나서기도 한다. 대비책을 미리 배우지 못한 문제에 직면할 때 우리는 교육의 오래된 화두에 다시 다다른다. ‘독자적이고 비판적인 생각의 힘을 갖춘 인간’을 교육의 주요 가치로 본다면 ‘생각한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법’을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구현한 게 초중고 교육과정인데 6~7년마다 새로운 분야 추가와 기존 과목 조정 등의 개정 작업이 이뤄진다. 과목마다 이해가 엇갈리니 힘든 과정이 되곤 한다. 그래서 큰 원칙이 필요하다. 우리는 어떤 인간을 길러내고 싶은가.
우리 교육에 대해서는 냉소적인 시각이 많았다. 암기 위주, 끝없는 반복 학습, 기본 개념을 극단적 수준으로 꼬는 ‘킬러 문항’들, 늘어나는 수포자(수학 포기자), 받아 쓰느라 바빠서 질문 안 하는 대학생들….
그래서일까. 창의성과 깊이 있는 사고의 훈련을 해야 하는 수학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학자가 나오는 것은 이르다는 견해가 많았다. 최근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의 필즈상 수상 소식 후에 나타난 각계의 비상한 반응은 단지 큰 상을 받았다는 걸 넘어서 이게 가능해진 사회적 자산의 유무에 대한 관심 아닐까. 허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박사 이전의 모든 교육을 받았고, 유학 후의 초기 주요 성취인 리드 추론 등도 서울대 석사 과정 연구의 확장이라는 점은 중요해 보인다. 세계가 인정하게 된 그의 창의성은 타고난 자질과 자라난 환경의 영향을 받았을 테니까.
이제 우리는 무엇을 고치고 보완해야 할까. 먼저 수포자가 늘어나는 현상은 단순 반복 중심의 교육 방식 탓인 것 같다. 고등학교 시절의 허 교수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문제를 푸는 능력은 탁월했으나 많은 문제를 빨리 푸는 것은 힘들어했다고 한다. 학교에서는 반복적 문제 풀이 연습으로 이걸 해결하려 하지만 어떤 학생들에게는 치명적이어서 포기로 이어진다. 수학을 포기하거나 학교를 포기하거나.
문항 수를 줄이면 모두 만점을 받으니 문항 수를 늘렸고, ‘실수 없이’ 많은 문제를 푸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여기에 최적화된 사교육의 존재감은 더욱 커졌다. 선다형 및 단답형 중심의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은 유형별 단순 반복 학습과 찰떡궁합이고, 억지로 변별력을 만들어내려고 기본 개념을 극단적으로 꼬는 소위 킬러 문항들이 등장했다. 역대 수능의 수학 킬러 문항 몇 개를 필즈상 수상자를 비롯한 세계 최고 수학자들에게 보여준 적이 있다. “이런 괴물 같은 문제를 왜 고등학생들에게 풀게 하느냐”라는 답을 들었다. 문제 수를 줄이고, 서술형 문항을 늘리며, 절대평가 도입 같은 파격적인 대안까지 고려해서 ‘변별력의 늪’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똑같이 가르쳐선 결국 소수의 잘하는 학생이 더 잘하게 되는 구조일 수밖에 없다. 개개인의 개별성에 집중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교육2030 보고서에서도 학생 주도성을 큰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 고교학점제에서는 인공지능(AI) 상담 시스템이 학생 데이터를 분석해 학생의 소질과 장래 희망 등을 파악하고, 개별화된 수강 포트폴리오를 제안하는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다양한 깊이’와 ‘수준’을 담은 선택과목의 폭을 넓혀야 하지만 학교 간 지역 간 격차의 문제는 상존한다. 소외 지역 학생도 다양한 선택 과목을 들을 수 있도록 소수 수강 과목을 교육청이 온·오프 혼합으로 운영해 각 학교가 공동 활용하도록 해야 한다.
무한 반복 학습을 통해서 문제 유형별로 신속하게 답을 낸다면 생각의 힘은 얻지 못하더라도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우수한 성적의 바보들’이 우리 교육이 지향하는 인간상이 아님은 명확하다.
박형주 아주대 수학과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