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본·연기·연출 3박자 맞았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입력 2022-07-11 04:06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 우영우 역을 맡은 박은빈. 에이스토리·KT스튜디오지니·낭만크루 제공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변호사를 소재로 한 케이블 채널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입소문을 타고 흥행하며 지난주 시청률 5.2%(닐슨코리아, 유료 가구 기준)를 돌파했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등으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요즘, 지상파나 종합편성채널에서도 달성하기 힘든 시청률이다.

이 드라마는 넷플릭스 국내 시리즈 분야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넷플릭스에서 서비스하는 작품의 전 세계 흥행 순위를 매기는 플릭스패트롤 집계에서도 9일 기준 TV 시리즈 부문 8위로 선전하고 있다. 일본 홍콩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대만 태국 베트남에선 1위에 올랐다.

주인공 우영우(박은빈)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와 천재적인 두뇌를 동시에 가진 법무법인 한바다의 신입 변호사다. 다른 사람이 생각하지 못한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간다. 드라마는 우영우에게 편견을 드러내던 사람들에게 매회 한 방을 날리며 생각할거리를 안겨준다.

평론가들은 자폐 스펙트럼과 법조계에 대한 사전 취재가 반영된 촘촘한 대본, 배우의 뛰어난 연기, 판타지를 접목했으면서도 과하지 않은 연출 등 ‘3박자’가 잘 맞은 점이 드라마의 완성도를 끌어올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우영우에게 아이디어가 떠오를 땐 그가 좋아하는 고래가 컴퓨터그래픽(CG)으로 등장한다. 현실과 비현실을 적절히 섞으면서도 과하지 않게 연출된 화면이 따뜻하면서도 신선하다는 평가가 많다.

무엇보다 주연 배우 박은빈의 연기가 두드러진다. 박은빈은 자폐 스펙트럼을 숨기려 하지 않고 주눅 들지도 않는, 당당하고 사랑스러운 우영우를 그려낸다. 아역 시절부터 내공을 다져온 박은빈이 경쾌한 걸음걸이와 독특한 말투, 엉뚱한 성격과 표정 등 캐릭터를 철저히 연구한 결과다. 우영우의 캐릭터에 힘입어 드라마는 전반적으로 밝고 경쾌한 톤으로 유지된다.

우영우가 송무팀 직원 이준호(강태오)와 함께 사건 현장을 조사하는 모습. 에이스토리·KT스튜디오지니·낭만크루 제공

박은빈은 지난달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처음 대본을 읽는데 어떻게 연기를 해야 하는지 감이 안 잡혔다. 섣불리 선입견을 갖고 다가갈 수도 없고 조심스러웠다. 조심스럽고 신중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폐 스펙트럼을 공부했다”고 털어놨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장애가 있기 때문에 도와줘야 한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 세상에는 다양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함을 강조한다.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장애인이 편견을 깨고 뭔가 이뤄내는 이야기는 많았다. 이 드라마는 특수한 상황을 특수하게 그리기보다 사람마다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다르며 다양성이 어우러졌을 때 세상이 좀 더 살기 좋은 곳이 된다고 말한다”며 “다름을 받아들이는 자세와 다르게 보려는 노력이 필요함을 보여주면서 시청자들이 편안하게 공감하게 한다”고 말했다.

자극적인 장르물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악인이 등장하지 않는 선한 드라마라는 점도 대중에 어필한다. 드라마 속 주요 캐릭터들은 장애가 있는 사람을 괴롭히거나 편견에 갇혀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는다. 선입견을 갖고 있었다 해도 이를 깨고 반성하며 주인공을 도와주는 존재로 활약한다. 우영우의 멘토로 등장하는 변호사 정명석(강기영)이 대표적이다.

정덕현 대중문화 평론가는 “기본에 충실한 드라마, 기본기가 잘 돼 있는 작품이다. 연출에 군더더기가 없으며 박은빈은 현실감을 살리면서 매력적인 캐릭터를 만들어 냈다”고 분석했다.

이 드라마는 서번트 증후군을 소재로 했던 드라마 ‘굿닥터’를 떠올리게 한다. 서번트 증후군은 뇌 기능 장애를 갖고 있지만, 특정 분야에서 일반인보다 뛰어난 능력을 보이는 증상을 말한다. ‘굿닥터’는 국내에서 사랑받은 후 미국 일본 등 해외에서 리메이크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의료계 전문가들은 우영우 같은 사례가 실제로 있다고 말한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 환자는 대인관계가 힘들고 뇌기능이 들쑥날쑥하다. 하지만 기억력이나 시각 기억력이 뛰어나면 우영우처럼 한 번 본 것을 카메라로 찍는 것과 같은 ‘포토그래픽 메모리’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김남준 광주광역시의사회 사회참여이사는 “실제 지능이 높으면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경우가 있다”며 “드문 사례이긴 하지만 지능은 물론 몰입도도 높다”고 말했다.

우영우가 좋아하는 고래가 하늘을 날아 첫 출근길을 함께하는 장면. 넷플릭스 캡처

지능이 뛰어나도 사회생활을 무리 없이 할 수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우영우도 문맥에 숨겨진 뜻이나 뉘앙스, 표정 등을 잘 알아차리지 못한다.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온 우영우에게 동료 변호사가 “어떻게 왔어요”라고 물었을 땐 ‘누구세요’라는 뜻이 내포돼 있지만 우영우는 “지하철 타고 왔어요”라고 답한다.

전문의들은 이 같은 드라마가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봤다. 유튜브 채널 ‘뇌부자들’을 운영하는 오동훈 연세온정신건강의학과의원 원장은 “자폐 스펙트럼 장애 환자를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나왔다는 게 의사로서 뿌듯하고 반가운 일”이라며 “장애에 대한 인식이 개선돼 더 많은 환자가 사회에서 이해받고 받아들여 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임세정 최예슬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