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AI는 인문학이다

입력 2022-07-11 04:02

윤석열정부의 코딩교육 특명 한마디에 공교육과 사교육 시장에 ‘코딩 광풍’이 불고 있다. 한두 가지만 가르치는 교육, 다양성을 잃은 사회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욱 위험한 곳이 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앞선다. 17세기 과학혁명이 일어나면서 과학과 인문학이 분리되기 시작했다. 뉴턴 등에 의해 고전역학이 확립되면서 자연과 세계에 대한 시각이 변환한다. 바로 근대 과학의 형성이다. 근대 과학은 자연과학과 대비되는, 수학과 인위적 실험탐구를 중시하는 새로운 과학의 모습이었다.

1955년 존 매카시는 인공지능(AI)이란 용어를 사용하면서 연구 영역의 확장을 이끌었다. 그의 노력은 머신 러닝, 예측 분석, 규범적 분석 등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AI는 인간의 학습 능력, 추론 능력, 지각 능력이 필요한 작업을 할 수 있도록 관련 능력을 컴퓨터 시스템으로 구현하는 것이다. 컴퓨터는 코딩에 의해 반응한다. 코딩을 이해하는 기술과 데이터에 대한 이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다. 코딩은 결국 사람에 대한 이해를 기술과 데이터로 구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인간과 과학을 동시에 잘 이해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없는 기술은 목적이 돼야 할 사람을 도구로 전락시킬 수 있다. 인간을 위하는 과학이 인간을 해하는 과학이 될 수 있다.

우리가 원하는 미래 사회를 위한 기술은 무엇일까. 소프트웨어 컨설팅 업계 1위 회사 대표 에릭 베리지는 현대사회가 STEM(과학·기술·공학·수학)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다고 우려한다. 과학이 무엇을 어떻게 만들지에 대해 알려준다면 인문학은 무엇을 만들어야 하고, 그 무엇을 왜 만들어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인문학은 세상을 이해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인문학은 설득을 가르치고 언어를 제공한다. 언어는 세상을 이해하는 인간의 코딩이다. 의도적으로 구조화돼 있지 않은 언어를 통해 감성을 사고하고 행동으로 전환한다. 반면 과학의 언어는 의도적으로 구조화돼 있어서 감성을 사고와 행동으로 전환하지 않는다.

피터 갤리슨 교수는 “과학기술에 인문학이 필요한 이유는 실제 과학기술 영역의 핵심 분야에 인문학이 쓰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현대 과학기술 시대에 새롭게 생겨나는 기술들은 인간 입장에서 볼 때 매우 생산적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매우 위험한 창조물이기도 하다. 그 이유는 기술 발달에서 생겨나는 문제는 과학기술의 지식인 방정식 같은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의 성공 신화는 인문학에서 시작했다. 다양한 영상을 확보하는 양적 팽창에 만족하지 않고 가입자들이 원하는 질적 접근을 시도한 결과다. 인류학자 그랜트 매크래켄의 자문으로 사람들은 같은 취향의 영상을 몰아보는 것을 좋아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문화적·미학적으로 연관성이 높은 영상에 대해 통일성 있는 또 다른 영상의 시청으로 이어지기 쉽다는 것이다. 디드로 효과다. 이를 적용해 단순 명료하게 추천 알고리즘이라는 심층적 데이터로 가입자를 늘렸다.

2013년 에드워드 스노든 전 미국 국가안보국(NSA) 요원은 페이스북과 구글 등 웹사이트들이 사용자의 비밀정보를 NSA에 공급해왔다고 증언했다. 프라이버시 문제가 대두돼 전 세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다. 개인 정보를 어디까지 수집할 것인가에 대한 것은 IT 전문가의 과학기술 영역보다는 철학·문학 등의 인문사회 영역과 보다 밀접한 관계가 있다. 현재 우리는 컴퓨터 암호를 중시하고 이해관계에 따른 계산을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런 시대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가치를 지향해야 하는가는 인문학자 영역이다. AI 과학자 자신이 하는 일이 역사와 세상에 어떤 의미를 가지려면 인문학 도움이 있어야 한다. 인문학 바탕이 없는 과학은 인간 그 자체를 무기력하고 무능력한 살덩어리로 만들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코딩교육과 함께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사는 게 옳은 삶인지를 교양해야 한다. 인문학적 소양을 체득할 수 있는 풍성한 기회가 제공돼야 한다. 구글, 애플 등의 세계적 대기업에서도 채용 인력의 65%는 STEM과 직접적 연관 없는 ‘비기술직’이다. 미래 인재가 갖춰야 할 필수 능력은 ‘통일성’이 아니라 ‘다양성’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학기술의 노예가 아니라 과학기술을 선도하는 창조자가 돼야 한다.

김성수 한양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