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 트럼프가 롤 모델인가

입력 2022-07-11 04:03

수년 전 국제부에 있을 때 밤 시간의 주된 업무는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도널드 트럼프의 트위터를 확인하는 일이었다. 트럼프는 거의 매일 트위터로 엄청나게 많은 말을 쏟아냈다. 누군가를 비난하는 말과 자기 자랑이 태반이었지만, 현안에 관한 중대 발언도 많아 자주 기사화할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는 자신이 뭔가에 대해 말하는 즉시 반응이 폭발하는 것을 즐겼다. 일종의 ‘노이즈 마케팅’ 같았다. 끊임없이 노이즈를 일으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윤석열 대통령이 출근길 도어스테핑(약식 회견)을 하면서 ‘땡윤 뉴스’ ‘일간 윤석열’이란 말이 생겨났다. 윤 대통령 발언 뉴스로 하루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점잖고 신중해서 지루한 말보다 폭탄 같은 말이 훨씬 많아 늘 뉴스가 된다. 이런 면에서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은 트럼프의 트윗과 닮았다.

대통령의 트윗과 도어스테핑은 그 자체로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대통령이 구중궁궐 같은 곳에 틀어박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국민이 알 수 없어 답답한 상황보다는 훨씬 낫다. 다만 대통령의 다변(多辯)이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려면, 본인의 생각을 표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생각을 바로잡을 줄도 알아야 한다.

‘정실 인사가 너무 심하다’ ‘김건희 리스크가 끊이질 않으니 대책 좀 세우라’ 이런 지적이 비등하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개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것이다. 깨지고 얻어맞으면서 잘못을 고쳐가는 과정이다. 알다시피 트럼프는 이런 과정이 없었다. 자신을 비판하는 이들과 싸우기만 했다. 요즘 윤 대통령의 모습도 그렇게 보인다. 잘못을 지적해도 수긍하지 않고 화를 내며 ‘전 정부보다는 낫다’고 강변한다. 대통령실도 납득 안 되는 해명으로 대통령 실드 치기에 급급하다. 전 정부보다 뭐가 나은지 잘 모르겠는데 대통령이 오기만 부리니 지지율이 추락할 수밖에 없다.

트럼프 집권기엔 그의 딸 이방카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대단한 위세를 부렸다. 비선이 아니라 공공연한 실세였다. 이 둘이 그야말로 ‘설치고’ 다녔는데도 미국에선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크지 않아 의아했었다. 능력이 검증되지 않았고 변변한 경력도 없으면서 대통령의 친인척이라는 이유로 국정에 깊숙이 개입하는 건 당연히 비정상적이고 비민주적인 상황이다. 국정의 사유화다. 윤 대통령도 이런 조짐을 보인다. 자신과 사적 인연이 있는, 제 식구 같은 사람들로만 주변을 채우고 있다. 공사 구분을 확실히 못 하는 것은 정말 심각한 문제다. 그런데 더 우려되는 건 대통령과 참모들이 지적되는 문제들을 중대한 문제로 인식하지 않는 것 같다는 점이다. 민심은 등을 돌리고 있는데 긴장감이 전혀 없이 천하태평이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뉴스타트가 쓴 ‘대통령의 권력’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이들(워싱턴의 관측자들)에 대한 대통령의 잠재적 영향력을 가장 크게 위협하는 것은 대통령이 오늘 보인 무능함이 아니라 어제와 지난달 그리고 작년에 일어난 일과 오늘 보인 무능함 사이에 명백한 유사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대통령의 실수가 일정한 유형을 이루는 것처럼 보이면 다음번에 그의 효율성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는 결과가 초래되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 지지율이 취임 두 달 만에 30%대로 주저앉았다는 건 신뢰의 위기가 너무나 일찍 찾아왔다는 얘기다. 트럼프를 롤 모델로 삼고 따라하려는 것이 아니라면 방향을 빨리 바꿔야 한다. 트럼프는 강력한 지지층이라도 있었지만 윤 대통령은 그런 것도 별로 없지 않나. 신뢰를 되찾으려는 노력이 없으면 와르르 무너지고 말 것이다.

천지우 정치부 차장 mogu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