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배달 음식을 시켜 먹으려고 배달 앱(애플리케이션)을 켜 메뉴를 고르다 보면 분명 당기는 음식인데 주문을 주저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비싼 배달료 때문이다. ‘음식도 맛있고 다 좋은데 배달료가 너무 비싸다’는 식의 리뷰를 본 지 오래된 것 같은데 한 번 오른 배달료는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다. 처음엔 타인의 고된 노동(배달)에 힘입어 집에서 편안하게 음식을 먹는 데 따른 마땅한 비용이라 여기고 기꺼이 치렀다. 하지만 물가며 금리며 내 월급 빼고 다 오르는 시대에 점점 부담스러운 건 어쩔 수 없다.
그래서였을까 한동안 라이더 단체에서 공개적으로 요구했던 ‘안전배달료’ 도입 얘기는 쏙 들어간 느낌이다. 안전배달료란 라이더가 과속이나 무리한 배달을 하지 않도록 건당 얼마의 배달료를 정부가 정해 보장하는 개념이다. 도입하면 아무래도 배달료가 더 오를 수밖에 없다 보니 소비자 여론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정부도 배달업계 스스로도 ‘여기서 더 올렸다가 모두가 곤란해진다’는 데 어느 정도는 공감한 것 같다.
안전배달료와 비슷한 취지지만 이미 시행 중인 제도가 화물차 안전운임제다. 지난달 화물연대는 올해 말까지 한시적으로 시행(일몰)되는 이 제도를 계속 유지하고, 현재 컨테이너와 시멘트 품목에만 적용되는 이 제도를 전체 화물차로 확대할 것을 요구하며 8일간 파업을 벌였다.
안전운임제와 안전배달료의 밑바탕에는 운수업 종사자의 소득을 일정 수준 높여주면 교통안전이 개선될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다. 운수업 종사자의 낮은 소득이 과속·과적 등 안전 위반의 주된 원인이니 소득을 개선해주면 안전 문제가 개선될 거란 논리다.
일견 그럴듯하지만 어딘가 엉성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당장 배달 라이더에게 배달료를 더 주면 라이더들의 아찔한 질주가 사라질까? 한국교통연구원이 화물차 안전운임제 성과를 분석한 보고서에 따르면 안전운임제 적용 대상인 컨테이너 화물차주의 월평균 순수입은 제도 시행 전인 2019년 300만원에서 제도 시행 2년차인 지난해 373만원으로 24.3% 올랐다. 시멘트 화물차주는 2019년 201만원에서 지난해 424만원으로 2년 새 순수입이 두 배 넘게 뛰었다.
반면에 안전운임제 적용 대상인 ‘사업용 특수자동차’와 관련된 교통사고는 2019년 690건에서 시행 첫해인 2020년 674건으로 2.3% 감소에 그쳤다. 과속이나 과적 운행제한 단속 건수도 근소하게 줄기는 했지만, 특수차 교통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는 같은 기간 21명에서 25명으로 늘었다. 판단 근거가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제도에 ‘안전’이란 이름을 내건 것 치고 소득 개선에 비해 안전 개선 효과는 애매한 수준이다.
안전을 소득에 따라 흥정할 수 있는 대상인 듯 접근한 발상도 재점검할 필요가 있다. 운수업 종사자의 구조적 어려움과 열악한 여건을 개선하자는 데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안전사고가 전부 열악한 여건 때문이라는 시각은 지나치게 단순화한 접근이다. 안전을 내세우며 소득을 보장해 달라는 요구는 좀 삐딱하게 보면 소득을 보장하지 않으면 안전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처럼 읽힌다. 운수업 종사자에게 안전은 돈에 따라 취사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본인을 위해서건 타인을 위해서건 반드시 준수해야 할 의무다.
국회 원 구성이 마무리되면 안전운임제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일몰제 폐지를 담은 법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안전운임제 적용 대상을 확대하면 결국 기업은 늘어난 물류비 부담 일부를 소비자에게 전가할 것이다. 이 문제가 단순히 화주(기업)와 차주 간 문제가 아닌 이유다.
음식 배달료와 마찬가지로 소비자들이 물가 상승을 기꺼이 감수하더라도 화물차주의 소득 확대를 지지할 만큼 공감대가 있을 때 안전운임제를 확대하는 게 맞다. 운수업 종사자들도 ‘투쟁’에만 기댈 게 아니라 달라진 모습을 객관적 지표로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이종선 경제부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