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동맥주입술·면역복합치료, 수술 불가능한 환자에 희망

입력 2022-07-11 20:37
주입술, 35% 이상 치료반응률 보여
면역복합치료 건보 적용 부담 줄어
전문의 잘 따라야 생존 가능성 향상

서울성모병원 간담췌암센터 성필수 소화기내과 교수가 진행성 간암 진단을 받은 40대 환자에게 치료 방법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모(44)씨는 만성 B형간염을 갖고 있었지만 별다른 치료 없이 지내다 2년 전 건강검진에서 혈액 수치 이상을 발견했다. 정밀검사 결과 간암 4기 판정을 받았다. 다른 장기로 암이 퍼지진 않았으나 간 내 침범 범위가 넓은 진행성 간암이어서 수술 치료가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도 간동맥항암주입술, 면역항암복합치료 등 진행성 간암에 최근 새롭게 시도되는 치료법들에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기적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24회 해당 치료를 받고 2년이 지난 현재 김씨는 영상검사에서 눈에 보이는 종양이 사라진 상태인 이른바 ‘완전 관해’가 됐다. 주치의조차 “가장 드라마틱한 효과를 본 환자”라고 했다.

흔히 말하는 간암(원발성)은 간세포암이 70%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간내 담관암 20%, 혼합형 10% 정도로 구성된다. 치료 예후가 좋지 않아 폐암에 이어 국내 암 사망률 2위다. 5년 생존율 또한 37.7%(2015~2019년 기준)로 낮다.


가톨릭의대 서울성모병원 간담췌암센터 성필수 교수는 11일 “간암 초기(1기와 2기 일부)에는 증상이 없어 알아차리기 어렵고 건강검진에서 우연히 발견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진행된 상태에서 늦게 진단되면 수술로 절제가 힘들다”고 설명했다.

진행성 간암 치료가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간 안의 큰 혈관인 간문맥의 침범 때문이다. 간문맥은 간으로 들어오는 혈액의 75%가 통과하는 관문이다. 소화관에서 흡수된 영양소를 간으로 운반하고 간세포에 산소와 영양을 공급한다. 암이 간문맥을 막으면 혈액 공급이 안돼 간 기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성 교수는 “간암 환자의 30%는 간문맥이 침범됐거나 간 밖으로 전이된 상태에서 진단받는다”고 했다.

수술 불가능한 진행성 간암의 1차 표준 치료는 암 세포만 공격하는 원리의 표적 항암제 두 가지로 한다. 서양과 아시아의 대규모 임상연구에서 소라페닙(상품명 넥사바)은 진행성 간암 환자의 생존 기간을 3개월 연장하는 효과가 입증돼 13년간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렌바티닙(렌비마)은 소라페닙과 비교한 임상연구에서 동등한 효능을 보여 최근 많이 쓰이고 있다.

문제는 표적 항암제가 고가인 데다 쓸수록 내성이 생긴다는 점이다. 투여하더라도 반응을 전혀 보이지 않는 환자도 많다. 소라페닙의 치료 반응률은 5%, 렌바티닙은 20~25%에 그친다. 고혈압이나 설사 등의 부작용도 환자에겐 부담이다.

이런 상황에서 근래 진행성 간암의 치료 효과를 끌어올리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이뤄지고 있다. 그 중 하나인 간동맥항암주입술은 다리의 대퇴부 동맥에 항암 주입 포트를 꽂고 고용량의 항암제를 관을 통해 간에 직접 전달하는 방식이다. 주사 투여에 비해 전신 부작용이 적은 게 장점이다. 간문맥이 침범돼 간 기능이 좋지 않은 진행성 간암에서도 35~40%의 치료 반응률을 보이고 있다.

201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안긴 면역 항암제(면역체크포인트 억제제)와 표적 항암제를 병용하는 방법도 급부상하고 있다. 면역 항암제는 암세포가 인체의 면역 체계를 회피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더 잘 인식해 공격하도록 하는 원리다. 특히 최근 보고된 임상연구들에 의하면 면역 항암제 아테졸리주맙(상품명 티센트릭)을 단독으로 쓰면 반응률이 15%에 그치지만 여기에 표적 항암제 베바시주맙(아바스틴)을 함께 사용할 경우 치료 성적이 약 35%까지 높아졌다.

성 교수는 “진행된 간암에 면역항암복합치료의 효과가 좋게 나오면서 요즘 의사들이 이 치료법으로 많이 갈아타고 있다”고 말했다. 수술이 불가능한 3기 이상 간암 환자 중에 간문맥 침범이 있어도 간 기능이 비교적 양호한 환자 등이 대상이다.

지난 5월부터 면역항암복합치료에 건강보험이 적용돼 환자 부담도 크게 덜어졌다. 비급여 시 연간 투약 비용이 6600만원에 달했지만 건보 혜택으로 치료 비용이 약 330만원(암환자 5% 본인 부담)으로 확 줄었다.

성 교수는 “진행성 간암도 최근 면역 항암제의 비약적 발전으로 장기 생존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소라페닙 등 밖에 없었던 몇 년 전과는 치료 환경이 많이 달라져 치료법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면서 “간암의 패턴을 잘 알고 간기능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수 있는 간암 치료 전문가를 잘 따라오면 생존 기간 연장과 더불어 완치의 기회도 잡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반면 전문의 진료를 거부하고 민간요법 등 의학적으로 검증 안된 치료에 매달리면 간 기능이 오히려 나빠져 치료 시기를 놓치기 십상이다.

오른쪽 윗배에 통증이 있고 덩어리가 만져지거나 기존 간질환이 갑자기 나빠지거나 피로, 쇠약감, 체중감소 등이 동반되면 이미 진행성 간암 단계일 수 있다. 따라서 간암 위험이 높은 사람은 평소 복부 초음파나 혈액검사 등 정기검진을 통해 조금이라도 일찍 발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만성 B·C형간염 및 간경변, 지방간 보유자는 간암 고위험군이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