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택소노미

입력 2022-07-08 04:10

이탈리아 북부의 70년 만의 가뭄과 알프스 산맥의 빙하 붕괴, 스페인과 포르투갈 지역을 덮친 40도가 넘는 폭염 등 기후변화가 몰고 온 재앙들이 세계 곳곳에서 꼬리를 물고 있다. 기온 상승을 억제하지 못하면 기후변화가 가속화돼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게 되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세계 195개국이 기후변화협약을 체결하고 탄소 배출을 억제하는 정책을 강화해 가고 있는 건 이 때문이다.

택소노미(taxonomy) 제도도 이런 흐름의 일환이다. 그리스어 ‘taxia(분류하다)’와 ‘nomos(법칙)’의 합성어인 택소노미는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경제활동으로 인정되는 목록을 담은 녹색분류체계를 일컫는다.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친환경 산업을 구분하는 기준이라고 할 수 있다. 유럽연합(EU)이 2020년 6월 처음 발표한 후 다른 국가들로 확산되고 있는 개념이다. 각국 정부는 자체 기준에 따라 택소노미를 채택하고 있는데 여기에 포함된 산업은 정부의 금융 및 세제 지원, 민간의 투자 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

EU 의회가 지난 6일(현지시간) 원자력과 천연가스 발전에 대한 투자를 택소노미에 포함하는 규정안을 가결했다. 회원국 사이에 이견이 컸지만 결국 원전 등을 포함하는 쪽으로 결론이 나 내년 1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EU의 결정은 우리나라 녹색분류체계인 K택소노미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정부는 원전 발전 비중을 높이는 쪽으로 정책 전환을 추진하고 있는데 K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시킬 좋은 명분이 생긴 셈이다.

원전은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친환경적이지만 중대 사고 발생 시 대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치명적 단점이다. 폐기물 처리도 난제이고 경제성을 놓고도 논란이 분분하다. EU가 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함하면서 기한을 설정하고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분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 마련 등 까다로운 조건을 단 이유다. K택소노미를 개정하려면 충실한 사회적 논의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

라동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