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정쟁이 특권으로 보인다

입력 2022-07-09 04:08

요즘 가장 눈에 띄는 뉴스 흐름을 꼽으라면 ‘정쟁’일 것이다. 5년 만에 여당 자리를 탈환한 국민의힘도, 거야(巨野)가 된 더불어민주당도 내부 권력 투쟁이 한창이다. 국민의힘은 이준석 당대표 성접대 의혹 건으로 연일 시끄럽고, 민주당은 당권을 둘러싼 내홍에 휩싸여 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여야는 하반기 국회 원 구성을 둘러싸고 대립 중이다. 복잡한 손익계산 속에 원 구성은 지지부진하다. 상임위원회가 꾸려지지 않다 보니 정책의 근간이 되는 입법 활동은 개점휴업 상태다. 정당이라는 집단 자체로만 보면 중요한 일이고 이런 다툼도 필요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과정에 국민이 없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모두가 고통을 겪는 시급한 경제 현안이 지천인 상황에서 국회가 저리 공전해도 되냐는 지적을 안 할 수가 없다.

한국 경제 상황이 언제 좋았던 적 있었냐는 얘기들을 한다. 이 말도 일리는 있지만 이번 위기는 사뭇 다르다. 대표적인 위기 지표로 꼽을 수 있는 것이 물가상승률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전년 동월보다 6.0% 상승했다. 물가상승률이 6.0%를 넘어선 것은 외환위기를 겪은 1997~1998년 이후 처음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없었던 일이다. 이 수치는 현실과 마주하면 엄청난 파괴력으로 다가온다. 주유소에 들르면 ℓ당 2100원 안팎인 휘발유값과 경유값에 한숨부터 나온다. 직장인이야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쳐도 생업으로 차를 몰아야 하는 이들은 어쩌나 싶은 걱정이 떠나지를 않는다.

밥 먹는 일도 공포가 됐다. 마트에 장을 보러 가면 상품을 하나 고를 때마다 고민하는 시간이 전에 없이 길어졌다. 특히 고기 사먹기가 겁난다. 통계청 집계를 보면 지난달 돼지고기 가격은 18.6%나 뛰어올랐다. 그렇다고 외식을 하기도 힘들다. 짜장면 한 그릇 가격이 1만원을 넘보고 있다. 3인 가족이 외식을 하면 최소 3만원은 각오해야 한다. 지난달 외식 물가가 전년 동월보다 10.4% 올랐다는데 체감은 이보다 더 끔찍하다.

물가가 오른 만큼 월급이 오르냐면 그렇지도 않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물가상승폭을 조금이라도 떨어뜨리겠다며 기업에 임금 상승 자제를 요청했다. 경제 정책을 진두지휘하는 입장에서 급박한 마음이야 이해가 간다. 임금이 오르면 물가도 동반 상승할 수 있다는 걸 모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민 모두가 물가 고통을 오롯이 감당해야만 한다고 단언하기는 힘들다. 정부와 국회가 정말 할 수 있는 모든 방책을 다 동원했을까라는 의문이 사라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이 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은행이 올린 금리도 국민 삶을 옥죄는 요소가 됐다. 아파트를 사겠다며 ‘영끌’이라도 했다면 비명을 질러야 할 수준까지 금리 압박이 심해졌다. 월급은 통장을 그저 스쳐지나가는 ‘객’이 됐다. 금융권만 배가 부르다.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의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역대 최고치인 8조9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투자는 개인 판단이니 책임도 영끌족에게 있다고 매도를 하기 앞서 정부와 국회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부동산에 매달리는 심리를 만들어낸 것은 결국 부동산 정책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주가 하락은 가계 순자산을 더욱 끌어내린다. 3000을 넘어섰던 코스피 지수가 2300까지 떨어졌다. 월급만 가지고는 부를 축적할 수 없어 주식시장에 뛰어든 개미들의 속은 타들어간다. 수출 실적은 계속 늘고 있고 민간 기업에 힘을 실어주겠다는 정부 방향성까지 발표됐지만 주가가 오를 기미가 안 보인다. 뭔가 잘못됐다고 보는 게 정상인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지고 코로나19로 무너진 공급망 때문에 유류·원자재 수입 물가가 오른 탓이라는 탁상 진단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그나마 정부는 뭐라도 해보려고 나서고 있다. 물가 대책을 내놓고 세금도 깎고 비상경제상황 대응 방안을 고민하는 모양새가 읽힌다. 이런 각종 정책을 보다 힘있게 추진하려면 법 개정이 필요한 부분도 있을 터다. 그런데 정부와 협의해야 할 국회가 정쟁에만 몰두하다 보니 한쪽 바퀴로 달리는 차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정부나 국회에 몸담은 이들이 국민 세금으로 녹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정쟁에 앞서서 국민부터 보면 좋겠다. 그러라고 ‘특권’을 준 거지 정쟁하라고 준 게 아니다.


신준섭 경제부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