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볼 때가 됐구나 싶었을 때 텔레파시가 통했는지 지인에게서 연락이 왔다. “같이 캠핑 한번 가시죠.” 예상치 못한 제안에 잠시 당황했다. “캠핑이요?” “꽤 재밌어요. 계곡물에 발도 좀 담가야죠.” “저는 캠핑 가 본 적도 없고, 캠핑 관련 상식도 준비물도 없는데요….” 캠핑을 가지 못할 이유들만 떠올랐다. 하지만 국내 700만 캠핑 인구의 일원인 그가 믿음직스럽게 말했다. “장비는 제가 다 가지고 있어요. 그냥 오시면 돼요.”
호기심은 있으나 모험심은 없는 사람이 바로 나다. 여행은 좋아하지만 쾌적한 잠자리와 화장실 위생 상태가 중요한 사람으로서 캠핑은 ‘굳이?’의 영역이었다. 게다가 숨 막힐 듯 덥고 습한 여름의 한복판에 캠핑이라니 말도 안 된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 본인이 알고 있는 즐거운 경험을 나눠주고 싶은 친구의 마음이 고마웠다. “그럼 왕초보 코스로 부탁해요.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으로요” 하는 선에서 응하고 말았다. 날짜가 다가올수록 장마철 폭우 소식을 기대했지만 그날만은 비 소식이 없었다.
마침내 디데이가 됐다.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예술가들이어서 평일로 시간을 맞추는 데 큰 어려움이 없었고 캠핑장은 우리 독차지였다. 생각보다 깨끗한 화장실, 작지만 에어컨이 설치된 전용 코티지, 시원한 물이 흐르는 냇가를 보자 마음이 놓였다. 얼음과 오이를 넣은 쫄면으로 점심식사를 마친 뒤 맥주와 과자를 챙겨 냇가로 나갔다. 파랗고 선명한 하늘 아래 발을 담그고 앉으니 순식간에 일행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누군가의 공격으로 어린 시절의 물싸움이 재현됐고 일행의 슬리퍼 한 짝이 벗겨져 떠내려가자 모두 한편이 돼 뒤쫓았다. 옷이 젖을수록 깔깔거리는 웃음소리도 커져갔다. 수영복과 튜브를 챙겼어야 한다는 캠핑 리더의 말에 바로 “그러게요”라고 답을 하고 있었다, 내가.
오후 4시쯤 샤브샤브로 저녁식사가 시작됐다. 대부분 평소 간편식으로 간단히 먹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었지만 캠핑장에서는 부산을 떨며 합세해 푸짐한 요리를 만들었다. 커피를 마시고 설거지를 마쳤는데도 저녁 6시. 과일과 치즈를 안주로 와인을 마시기로 했다. 그러다 보니 저녁 8시. 가져온 고기는 먹어야 하기에 세팅을 바꾸고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캠핑은 모여 앉아 먹고 치운 다음 또 다른 걸 먹고 치우는 놀이 같았다. 서로의 이야기들이 자연스럽게 꼬리를 물었고 배춧잎 한 장을 자르면서도 추억이 생겼다.
숲속의 여름밤은 서울처럼 습하고 덥지 않았다. 어느새 다들 긴팔과 긴바지를 입고 있었다. 새벽부터 비가 올 거라는 일기예보에 텐트 대신 코티지와 차를 이용해 잠을 자기로 했다. 나는 추위를 잘 타는 편이라 일행의 에어컨 이용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내 차에서 혼자 자기로 했다. 바닥이 고르지 않아 새우잠을 청했다. 피곤함 덕분에 불편한 가운데서도 금방 잠이 들었다.
몇 시쯤 됐을까 눈을 떴을 때 사방은 온통 어둡고 고요했다. 선루프를 통해 밤하늘을 가리는 까만 나뭇잎들이 보였다. 휴대폰을 찾아 피아노곡을 켜놓고 그대로 한참을 누워 있었다. 한구석의 나뭇잎들이 음악 소리에 조금 움직이는 것 같았다. 여긴 어디이고 나는 누구일까, 낯선 숲의 작은 차 안에서 눈을 깜박이다가 갑자기 눈물이 흘렀다. 조용한 눈물이 계속됐다. 눈물의 이유는 알 수 없어도 그 순간이 일상의 아름다운 쉼표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언제 다시 잠이 들었는지 일행이 차창을 두드리는 소리에 깼다. 아침 9시까지 단잠에 빠져 있었다. 우린 어제처럼 열심히 만두와 떡볶이와 누룽지를 만들어 먹고 헤어졌다. 돌아오자마자 인터넷으로 차박용 매트와 캠핑 의자를 검색하며 “가을 캠핑도 갑시다”라는 말을 진심으로 기대하고 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새로운 환경에서 함께 먹고 자며 즐거운 추억을 만드는 일이 캠핑이었다. 그런데 다들 캠핑하면서 한 번쯤 이렇게 눈물도 나고 그러는 걸까?
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아트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