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39)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 겸 한국 고등과학원 석학교수는 6일 “부담감에 억눌리지 않고 앞으로도 찬찬히 꾸준하게 공부해 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수학 연구의 방향성과 관련해 “젊은 수학자들이 자유롭게 즐거움을 좇으면서 장기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을 만한 여유롭고 안정적인 연구 환경이 제공되면 좋겠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핀란드 헬싱키에 있는 허 교수는 이날 서울 강남구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수상기념 기자브리핑에서 화상으로 수상 소감을 전했다. 허 교수는 올해 초 국제수학연맹 회장에게 처음 수상 소식을 전해들었다며 “(필즈상 수상에 대한) 큰 기대를 갖고 전화를 받았는데 그 소식이 맞았다”고 돌아봤다.
1936년 제정된 필즈상은 새로운 수학 분야를 개척한 만 40세 이하 수학자를 대상으로 4년마다 수여된다. 한국인이나 한국계 수상은 허 교수가 처음이다. 그는 미국 국적자이지만 초·중·고교 과정과 대학 학부, 대학원 석사과정을 모두 한국에서 마친 후 박사과정을 미국에서 밟았다.
허 교수는 자신을 “한국에서만 교육을 받아본” 국내파라고 소개하면서 “초·중학교 때 한 반에 40~50명이 모여 같이 생활하고 알아가는 과정이 있었다. 그 때만 할 수 있었던 경험은 지금의 저로 성장하는 자양분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롤모델로 유명 수학자가 아닌 주변인들을 꼽았다. 그는 “개인적으로 영웅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들과 선생님의 이름, 제가 배울 수 있는 부분을 정리한 수첩이 있다. 수십명이 넘는다”며 “그분들이 모두 제 롤모델”이라고 말했다. 허 교수는 수학을 대할 때도 소통과 관계를 중시한다고 했다. “현대 수학에선 공동연구가 활발하고 동료들과 함께 생각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고 멀리, 깊이 갈 수 있다. 그 경험이 굉장한 만족감을 주기 때문에 수학의 매력에서 십수년간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허 교수의 연구분야는 조합 대수기하학이다. 대수기하학을 통해 조합론의 문제를 해결하는 분야다. 그는 “논리적 인과관계가 없는 수학적 대상들 사이에서 동일한 패턴이 반복적으로 관찰된다”며 “그 이유를 밝히는 데 약간이나마 공헌한 것이 저의 연구들”이라고 설명했다.
지금은 세계적 수학자의 반열에 올랐지만 그는 시인을 꿈꾸며 고교를 자퇴하고, 대학에서도 방황의 시절을 보낸 독특한 ‘영재’다. 최재경 고등과학원 원장은 “시는 언어를 꿰서 만든 아름다움이고 수학은 논리를 엮어서 만든 아름다움”이라며 “시인과 같은 자유로운 성향은 수학자에게 도움이 된다. 허 교수에게서 그것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허 교수의 석사과정을 지도한 김영훈 서울대 수리과학부 교수는 “허 교수는 자신을 믿고 길을 개척해가는 내면의 힘이 강한 학생이었다”고 했다. 또 “대학에서 큰 프로젝트나 연구비를 추구하는 게 아니라 자기만의 호기심을 추구하는 걸 격려하는 문화가 자리 잡으면 노벨상 수상도 더 빨라질 것”이라고 했다.
박상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