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좌 동결 급한데 ‘핑퐁’ 수사… 코인 사기 피해 50대 극단 선택

입력 2022-07-07 04:06
태블릿 모니터에 하락하고 있는 암호화폐 시세가 표시되고 있다. 뉴시스

가짜 코인거래소에 12억원을 사기당한 50대 남성 A씨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해 위중한 것으로 전해졌다. ‘조유나양 일가족 사망 사건’의 한 배경으로 가상화폐 투자 실패가 추정된 데 이어 ‘코인’ 투자를 둘러싼 사회적 병폐가 잇따라 불거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가짜 코인거래소를 만들어 투자금을 빼돌린 일당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수사 중이다. 현재까지 파악된 피해자는 6명이고, 피해액은 15억원 정도다. 추가 피해자가 확인되고 있어 피해액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경찰 등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12월 채팅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자신을 금융투자전문가라고 소개하는 B씨와 연결이 됐다. 자영업을 하던 A씨는 코로나19로 경영이 악화돼 돌파구 모색에 부심할 때였다.

B씨는 자신이 가상화폐 투자로 고수익을 올린 화면을 보여주며 C코인거래소 사이트를 알려줬다. A씨는 계정을 만든 뒤 일단 약간의 현금을 해당 사이트에 이체해 코인을 샀다. 얼마 지나지 않아 15~30%의 수익이 발생한 것을 본 A씨는 투자금을 늘렸다.

그런데 지난 1월 A씨가 그간의 수익금을 인출하려 하자 C거래소 측은 “보증금과 수수료를 내라”며 별도 비용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돈을 내지 않으면) 계좌를 동결하겠다”는 협박도 했다고 한다. 기존 투자금에다 추가 자금 투입을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투자 총액은 12억원으로 불어나 있었다. 이 중 절반 이상은 빚을 내 충당한 것이었다.

A씨는 거래소 측에 “이번 주 송금이 안되면 저는 이곳에서 살 수가 없습니다” 등의 호소 메시지를 보냈지만 끝내 돈을 인출할 수 없었다. 사기라는 걸 눈치챘을 땐 이미 사이트가 폐쇄된 뒤였다. 자책하던 A씨는 지난 5월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생명은 건졌지만 의식은 돌아오지 않고 있다.

경찰 수사 진척이 더딘 것도 A씨를 더욱 힘들게 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5월 6일 서울경찰청에 고소장을 제출했지만 사건은 같은 달 18일 제주경찰청으로 넘어갔다가 8일 뒤 다시 제주 서귀포경찰서로 이첩됐다. 이후 서울경찰청으로 다시 넘어와 지난달 24일에야 수사관이 배정됐다. 이때는 A씨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뒤다. 코인 사기는 가상화폐를 현금화하기 전에 계좌를 동결하는 것이 피해 회복에 중요하지만 시간이 지체됐다. A씨 측은 “수사가 늦어져 (A씨가) 직접 사설 업체에 의뢰해 가상화폐 이체 흐름을 쫓기도 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탕주의’ 영향에 가상화폐 하락장이 겹치고 이를 악용한 사기마저 급증해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었다고 진단했다. 박종석 정신건강의학전문의는 “올해 들어 ‘코인 우울증’ 환자가 증가했다. 특히 루나 코인 폭락 이후 상담횟수가 두 배 이상 늘었다”며 “고수익을 목적으로 한 단기 투자일수록 쾌감과 좌절의 폭도 커 불안증세는 더 심각해진다”고 말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