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절차 갖추고 예산 편성”… 명확해진 ‘안전보건관리체계’

입력 2022-07-07 04:03

검찰은 최근 같은 유해물질이 든 세척액을 사용해 인명사고를 낸 두 제조업체 대표이사 중 한 명만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했다. 두 사람의 운명을 가른 건 그동안 법조계에서 “불분명하다”는 평가가 많았던 ‘안전보건관리체계’였다. 법조계에선 이번 기소 사례가 일종의 ‘리딩 케이스’가 되고, 향후 판례가 쌓이면 해석이 분분했던 안전·보건 확보 의무에 대한 구체성도 마련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창원지검은 지난달 27일 에어컨 부품 제조업체 두성산업 대표 A씨(43)를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A씨는 올 초 유해 화학물질이 든 세척제를 사용하면서도 환기 장치인 국소배기장치를 설치하지 않아 회사 직원 16명이 독성간염에 걸리게 한 혐의를 받는다.

그런데 동일한 세척제를 사용하다 13명의 직원이 독성간염에 걸린 대흥알앤티 대표 B씨(65)는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해선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B씨의 경우 작업장에 성능이 떨어진 국소배기장치를 방치한 혐의(산업안전보건법 위반)가 적용됐다. 같은 세척제를 사용했고, 직원이 독성간염에 걸린 결과는 같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에 대해서는 검찰 판단이 갈린 셈이다.


두 대표에 대한 처분을 가른 핵심 기준은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여부였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유해 화학물질 취급 사업장의 경우 위험요인을 확인해 개선하는 업무 절차, 종사자 의견 청취 절차를 두고 재해 예방 필요 예산을 편성할 것을 요구한다. 두성산업의 경우 이런 절차가 전무했던 반면 대흥알앤티는 절차를 마련하고, 예산을 편성한 사실은 인정돼 중대재해처벌법 망을 피했다.

이런 수사 결과에 노동계에선 검찰이 법 적용을 형식적으로 했다는 비판도 나왔다. 하지만 애초 안전·보건 확보 의무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초기부터 판단 기준이 모호하고 해석에 어려움이 많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송인택 전 검사장 등은 지난 3월 펴낸 ‘중대재해처벌법 해설과 대응’에서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필요한 조직 인력의 구비, 예산의 편성 집행, 유해 위험요인 확인 및 개선의 이행과 점검 등은 거의 모든 조치 의무가 포괄적이어서 무엇을, 어떻게, 어느 정도로 하라는 것인지 쉽사리 알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처분으로 ‘1호 기소’ 전 혼란 상황에서는 한발 나아갔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상태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는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갖추기 위한 노력이 있었고 계획을 세워놨다면 구축 의무는 어느 정도 이행됐다고 (검찰이) 본 것 같다”며 “보여주기식으로 일단 기소한 게 아니라 최소 기준을 적용하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검찰청도 올 초 일선 청에 배포한 벌칙 해설서에서 안전·보건 관련 추가 예산 편성 필요성이 명확한데도 이를 방치하는 등의 사실이 확인됐을 때 형사 제재가 가능하다고 해석한 바 있다.

다만 2호 기소 사례부터는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의무뿐 아니라 필요조치 이행 의무까지 기준이 다소 상향될 가능성이 크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에선 유해·위험요인의 확인 및 개선이 이뤄지는지를 6개월에 1회 이상 점검한 후 필요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법 시행 직후 발생해 점검 및 필요조치 이행 의무에선 다소 비껴갔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는 “첫 기소부터 시작해 향후 판례가 쌓이면서 안전보건관리체계에 대한 해석 등이 더 명확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임주언 이경원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