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 판사님, 영끌 대신 성실히 저축하면 바보인가요?

입력 2022-07-07 04:02

서울회생법원의 ‘빚투 손실금 탕감’ 지침을 놓고 반발 여론이 거세다. ‘영끌’과 투기를 뒤로하고 성실하게 저축하며 살아온 이들은 바보가 된 기분이라며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법부는 여론의 분노를 ‘법에 무지한 시민’ 탓으로 돌리며 외면하는 모양새다.

서울회생법원은 지난 4일 주식·코인 투자 손실금을 빚 총액에서 제외한다는 보도에 대해 ‘오보’라고 해명했다.

과거부터 부동산, 자동차 등 재산에 대해 현재 가치를 적용해 청산가치를 매겨왔고 주식·코인에도 이런 기준을 동일하게 적용하게 된 것뿐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는 납득하기 어렵다. 부동산은 의·식·주 가운데 한 수단인 필수재다. ‘갭 투자’ 등 투기적 목적도 있지만 국민 대부분은 내 집 마련을 위해 부동산을 구매한다. 자동차도 크게 사치스럽지 않은 이상 생활에 꼭 필요한 재화로 분류된다.

‘빚투’는 사업실패·투병·생활고 등 다른 회생 사유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대박’을 노리고 감당하지 못할 빚을 지고 뛰어든 돈 놀음에 어떤 사회적 순기능이 있는지 의문이다.

특히 일부 투자자는 ‘월급쟁이로 살면 바보’라는 식의 발언을 일삼으며 근로에 임하는 사람들을 조롱해왔다. 이제 와서 ‘영끌 도박’에 나선 이들의 손실을 사회가 함께 갚아나가야 할 이유가 있는지 궁금하다.

성실하게 월급을 저축해온 이들은 허탈을 넘어 절망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성실하게 사는 사람을 바보 만드는 처사” “노동보다는 도박을 장려하는 나라”라는 비아냥이 넘친다. 법원은 이런 목소리를 무시하고 ‘부동산에 적용해온 원칙이니 코인에도 적용하는 게 맞다’는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서울회생법원은 유독 이번 지침에 비판이 쏟아지는 이유를 곱씹어보기 바란다. 노력이 보답받길 바라는 시민의 울분을 무시하고 이번 사태를 ‘대중의 미비한 법 지식’ 탓에 벌어진 해프닝으로 여기지 않았으면 한다. 오늘도 묵묵히 직장을 지키는 국민들은 ‘바보’라서 영끌 도박판에 뛰어들지 않은 것이 아니다.

김지훈 경제부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