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하지만 따뜻한 한 가족의 가슴 벅찬 이야기

입력 2022-07-08 03:04

저에게 인생 책은 ‘분노의 포도’입니다. 이 책을 읽는데 하나님이 저에게 주시려고 작가를 통해 준비시켜 놓은 이야기란 느낌을 받았습니다.

소설의 배경은 1930년대입니다. 경제 대공황으로 미국 국민의 3분의 1을 가난으로 몰아넣었던 시절입니다. 우리가 겪은 IMF 시절 이야기인 셈입니다. 소설은 톰 조드가 가석방으로 귀향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작가 존 스타인벡은 주인공 조드를 등장시키기 전 앞으로 진행될 사건의 무대를 먼저 보여줍니다. 그게 1장입니다. 오클라호마주에 엄청난 가뭄과 모래폭풍이 왔습니다. 온 사방이 흙먼지에 덮여 있습니다. 농사는 망했습니다.

남자들은 다들 말이 없습니다. 여자들은 조용히 남자들의 안색을 살핍니다. 한참 후 남자들의 얼굴에서 망연한 표정이 사라지고 강인함과 분노와 저항이 나타났습니다. 이제 여자들은 압니다. 남자들이 주저앉지 않으리라는 걸. 소설은 여자들의 직감이 어떻게 현실화하는지를 보여줍니다.

조드 가족은 가족회의를 하고 결국 캘리포니아로 급하게 떠납니다. 이웃들도 다들 떠나고 있습니다. 흉년으로 빚을 지게 된 농부들은 땅을 은행에 넘겨주게 됩니다. 세간살이를 팔아 돈을 마련하여 떠납니다.

‘분노의 포도’ 번역본은 두 권입니다. 면수로 930쪽이나 됩니다. 1권은 캘리포니아로 가는 3218㎞의 여정이고 2권은 캘리포니아에서 겪는 시련입니다. 작가는 이것을 두 가지 트랙으로 보여줍니다.

소설은 총 30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작가는 짝수 장에서는 조드 가족의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하지만 홀수 장에서 작가는 샛길로 빠져 7장에서는 중고 자동차 딜러 이야기를 쓰고, 15장에선 도로변 식당 이야기를 씁니다.

줄거리는 한 농부 가족이 그나마 살기가 낫다는 캘리포니아로 희망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그런데 그 길을 가는 것도 고달프고 꿈을 안고 찾아간 곳은 낙원이 아니었습니다. 지주들은 이주민들을 값싼 임금으로 부려먹었습니다.

흉년이 들었던 고향에서도 사람들이 굶지는 않았습니다. 한데 캘리포니아에선 사람들이 굶어 죽었습니다. 오렌지와 감자와 고기가 넘쳐났지만, 제값을 못 받는다고 지주들은 강에 버리거나 석회와 등유를 뿌려 썩히고 태웠습니다.

소설을 읽으며 가슴이 울컥하는 건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을 보기 때문입니다. 남을 등쳐먹는 사람들 속에서도 선한 사람이 있습니다. 생면부지임에도 남의 아픔을 같이 아파하고 남의 기쁨을 함께 기뻐해 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소설을 읽고 나면 케이시 목사가 한 말이 머릿속에서 울립니다. “사람은 자기만의 영혼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 커다란 영혼의 한 조각인지도 모른다.”(2권 372쪽) 저는 ‘커다란 영혼의 한 조각’이 우리에게 넣어준 주님의 마음 같습니다.

이정일 목사(문학연구공간 '상상'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