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가?’의 질문이 그 어느 때보다 크고 다급하게 다가온다. 코로나19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 급격한 인플레이션, 미국과 중국으로 양분된 가치사슬 대립, 식량난 등으로 지구가 출렁이고 요동친다. 오랜 기간 세계 질서의 큰 축이었던 세계화의 부작용과 취약함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복잡하게 얽혀 폭풍 전야처럼 한꺼번에 몰아칠 기세다. 한 치 앞도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다시 ‘지속가능한 미래’가 시대의 화두로 떠오르는 까닭이다.
지속가능이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를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가 다짐하는 약속이다. 지난 세대와 지금 세대와 다음 세대가 동일선상에 존재하는 통시대적 개념이자 통공간적 개념이다. 이러하기에 지속가능에는 어제에 대한 기억과 오늘에 대한 성찰과 내일에 대한 희망이 담겨 있다.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인류의 집단지성이 요청되는 의제다.
유럽은 탄소 배출 감축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책무로 인식하고 모범을 보여 왔다. 그런 유럽이 최근 들어 주춤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전기차 천국으로 불리는 노르웨이마저 전기차 혜택을 대폭 줄인다고 한다. 유럽 주요국도 비슷한 추세를 보인다. 이유는 국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경제안보 문제가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최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의 장기화로 인한 대외 환경의 급격한 변화가 유럽이 직면한 난제로 등장했다. 러시아발 에너지 위기는 다른 대안을 찾아야 하는 유럽으로 하여금 석탄발전을 늘려야 하는 상황으로 몰아가고 있다. 동시에 전기차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다.
최근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은 진퇴양난에 처한 독일을 신랄하게 꼬집었다. 러시아와의 경협을 평화라고 강변한 독일이 결국 푸틴 덫에 걸렸다는 것이다. 성급한 탈원전으로 러시아 천연가스에 종속되는 위험에 처했고 과거 오랜 기간 잘못된 판단에 근거해 진행된 에너지 정책의 청구서가 지금 날아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독일은 탄소중립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였다. 이런 독일이 유럽연합(EU)의 내연기관차 폐지 방침에 반대하는 입장을 보인다. 눈치를 보고 있던 프랑스와 이탈리아도 반대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탄소중립은 물론이고 새로운 규범으로 여겨지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도 역주행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유럽 국가들이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분명 역설이다.
급진적 탈원전 정책을 펼친 문재인정부는 지난해 온실가스 감축 2030년 목표치를 기존 26.3%에서 40%로 높였다. 2030년 전기차 보급 목표치도 385만대에서 450만대로 상향 조정됐다. 업계에선 현실성이 결여된 수치라고 비판하며 작금의 국제 정세와 여러 조건을 고려할 때 수정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근자의 국내외 동향을 지켜보며 기후변화와 에너지를 둘러싼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교훈을 직시해 본다. 무엇보다 인류와 지구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할지에 대한 인문학적이고 보다 본질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미래를 향한 큰 그림은 여기에서 나온다. 기후변화와 에너지를 둘러싼 담론을 적극 주도하고 펼쳐내야 한다. 그래야 선진국이다.
정치 일방적인 정부 주도의 톱다운 방식으로는 우리의 최근 경험에서 확인하듯이 엄청난 사회적 갈등을 촉발한다. 공론화 과정 없이 진행된 급진적 탈원전 정책이나 그 반대의 정책 모두 반복해서는 안 된다. 이념이 아니라 과학이 기후에너지 정책의 중심이 돼야 한다. 그런 과학도 유연성이 결여된 과학일방주의나 과학결정론이 아니라 사회와 깊은 대화를 하는 과학이어야 한다.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과학과 사회의 생산적 협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원전 지상주의’ ‘신재생에너지 만능주의’를 모두 경계해야 한다. 에너지 측면에서의 지속가능은 원전과 신재생의 균형적 협력 관계를 어떻게 만들어 내느냐에 달려 있다. 지상주의와 만능주의, 그 어느 일방적인 것에 의해 질주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지속가능에는 역사와 사회가 갖는 준엄함과 담대함이 내재돼 있기에 풍부한 상상력이 요청된다. 균형적 협력이 지속가능한 미래를 담보하는 핵심이다. 협력이란 자원과 기회와 가치의 운동장을 넓게 쓴다는 뜻이다. 우리 공동의 미래를 만드는 일이 여기에 달려 있다.
박길성(고려대 교수·사회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