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오래 걸려요?” “시간은 얼마나 걸려요?” “질문은 몇 개나 있어요?”
대전 동산고 탁구전용체육관에서 지난달 29일 만난 키 144㎝, 몸무게 34㎏의 이승수(11·대전 동문초)는 궁금한 게 많았다. ‘빨리 끝내고 연습해야 하냐’는 물음에 짐짓 “아뇨 괜찮아요. 그냥 물어본 거예요”라고 안심시키면서도 탁구채와 탁구공을 연신 매만졌다. 아버지 이수기 코치가 “(초등학교 5학년부터) 수업시간이 늘어나고 훈련시간이 줄어서 좀 신경 쓰일 것”이라고 귀띔했다.
올해 1월 한국 탁구계에 이승수라는 이름이 각인됐다. 전국종합탁구선수권대회 첫 경기에서 4살 위 중학생을 이겼고, 64강에선 성인 실업선수를 꺾어 파란을 일으켰다. 32강에선 당시 국가대표 맏형이던 이상수(32·삼성생명)에게 패했지만 첫 세트에 듀스 접전까지 가는 등 기죽지 않았다.
지난 4월 전국남녀종별탁구선수권대회 U-16(14~16세)에 도전해 동메달을 걸었고, 5월 WTT 유스 컨텐더 베를린 2022 U-13 남자 단식에선 국제대회 첫 우승을 맛봤지만, 이승수는 의연했다. “(생활에) 변화가 생기긴 했는데 그렇게 부담은 안 돼요. 사람들이 잘해줄 땐 더 열심히 실력으로 보여주고 싶어요.”
많은 이들이 탁구 ‘신동’ ‘천재’의 등장을 반겼지만, 이 코치는 딱 잘라 말했다. “재능이 뛰어난 선수도 있죠. 근데 승수는 진짜 노력의 산물이에요.”
본격적으로 탁구를 시작한 건 7살. “아빠가 탁구장에서 사람들 가르치는 모습 보면서 저도 치고 싶다 생각했어요.” 하지만 재능은 크게 눈에 띄지 않았다고 했다. 오히려 운동 능력은 떨어지는 편이었다.
이승수의 무기는 승부욕과 집중력이었다. “이길 때는 으쓱했는데 지면 계속 울었어요. 질 때마다 우니까 선생님이 그만 울라고, 울면 큰 선수 못 된다고 혼냈어요. (웃음) 그래서 저도 모르게 고쳤어요.”
이승수는 모든 것을 탁구에 맞춘다. 탁구 칠 때 머리카락이 거슬릴까 봐 짧게 자른 ‘밤톨이’ 머리는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따라 식단 관리도 한다.
“탁구 때문에 스마트폰도 줄이고 콜라랑 사이다가 먹고 싶어도 참아요. 외국에서 맛 이상한 음료수들이 있을 땐 콜라를 먹지만…. 호날두가 안 먹는다고 해서 따라 하는 거예요. 라면도 제가 먼저 안 먹겠다고 했어요. 한 번쯤 먹고 싶을 때가 있는데 이제는 엄마가 못 먹게 해요.(웃음)”
최근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는 WTT 유스 컨텐더 베를린 2022 U-13 결승전이다. 이승수는 일본 유망주에게 역전승했다. “첫 국제대회 우승이어서 기억에 남아요. 지고 있을 때도 충분히 잡을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이후 폴란드에서 열린 U-15 대회 4강에서 15세 랭킹 1위 선수에게 역전패했을 때는 아쉬웠다. “2대 0, 9-7로 이기다가 2대 3으로 졌어요. 기분이 아우… 라켓 던질 뻔했죠.”
언젠가 세계랭킹 1위가 되고 올림픽 금메달 2개를 따고 싶다고 했다. 어떤 선수로 남고 싶냐는 물음에는 “겸손하고 항상 열심히 하는 선수”라고 답했다.
이승수의 활약 뒤에는 이 코치가 있다. ‘탁구계의 손웅정(손흥민의 아버지) 같다’고 하자 손사래를 치면서도 “자서전을 보며 공감되는 부분은 많았다”고 말했다. 이 코치는 탁구 청소년대표로 뽑힌 적도 있지만 자신을 “아무것도 아닌 선수”라고 말했다. 아들에게 험난한 운동의 세계를 겪게 하고 싶지 않았지만, 아들은 물론 딸 예서(8)도 탁구선수의 길을 걷는 중이다. 그렇게 시작한 동행은 고행의 길이었다.
“운동시키면서 하루도 편한 날이 없었어요. 사람들은 즐겁게 운동을 잘하길 바라잖아요. 근데 저희는 그렇게 못했어요. 아무리 탁구를 좋아해도 과정은 힘들거든요. 매일 아이랑 씨름해야 하고, 아이가 힘든 걸 보면 시키기 싫고, 선을 안 그으면 나태해지는 것 같고. 내 욕심에 애를 끌고 가는 건 아닌지 미안하고.”
코치 생활을 하면서 몇 달간 하루에 한두 시간밖에 못잤다고 했다. “자식이라 그런지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잠도 안 자고 연구했죠.” 이명 증상이 잦아졌고 몸무게도 15㎏ 늘었지만, 성장하고 즐거워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다시 힘을 낸다. “결국 승수가 다 이겨내 준 덕분이에요.”
아들의 실력도 누구보다 냉정히 평가한다. “성인 선수를 늘 이기는 것도 아니고, 중학생한테도 언제든 질 수 있어요. 과장된 면이 있어요. 승수한테도 거품이 많이 껴있다고 말해줘요.”
그는 아들이 단지 성공한 선수가 아니라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랐다. “인성이 안 되면 다른 건 소용없어요. 예전엔 승부욕이 너무 강해서 경기할 때 형들을 약 올렸어요. 그렇게라도 이기고 싶다는 거예요. 엄청 혼냈죠. 탁구가 다가 아니라고, 상대방 마음도 이해할 줄 알아야 한다고. 지금은 많이 변했어요.”
승수가 언젠가는 즐겁게 탁구를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털어놨다. “다른 것 못하고 다른 아이들 놀 때 못 놀고 매일 운동한다는 게 힘들 거예요. 나중에는 즐기면서 했으면 좋겠어요.”
대전=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