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사람은 19세기 서구제국이 한반도를 식민지로 삼으려 했다고 생각한다. 구체적인 예로 1866년의 제너럴 셔먼호 사건과 병인양요, 1871년의 신미양요를 든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제너럴 셔먼호 사건은 미국인과 영국인이 조선과 통상을 위해 왔다가 침몰한 사건이며, 신미양요는 이 사건의 진상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병인양요는 조선 정부에 의해 살해된 프랑스 신부 9명의 책임을 묻기 위해서 온 것이다.
원래 영국과 프랑스는 전 세계에 많은 식민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19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이런 그들의 생각은 수정됐다. 19세기 후반 영국은 통상에 관심이 있었고, 프랑스의 경우 천주교 선교사를 보호하려고 했지만,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다음 세계무대에 등장한 것은 미국이다. 미국은 유럽제국들이 걸어간 길을 반복하려고 하지 않았다. 미국은 자신이 영국의 식민 지배에서 해방됐기 때문에 남의 나라를 식민지로 삼는 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의 관심은 통상을 위한 안전한 항로의 확보였다.
그러나 우리 주변에 있는 나라들은 생각이 달랐다. 조선의 종주국 노릇을 했던 중국은 조선을 계속 속국으로 만들려고 했다. 유럽 국가들이 아시아를 식민지로 삼는 것을 본 중국은 조선을 보다 강력하게 통치하려고 했다. 일본은 서구 문명을 받아들여 근대화한 다음에 한반도를 지배하고, 이를 근거로 대륙을 침략하려고 했다. 러시아가 한반도에 등장한 것은 1860년이었다. 중국으로부터 연해주를 빼앗은 러시아는 한반도를 장악해 태평양에 진출하고자 했다. 볼셰비키 혁명 이후 소련은 사회주의를 내세우면서 주변국들을 합병해 대제국을 만들었다. 한반도에 대해 영토적인 야심을 가진 나라는 서구제국이 아니라 우리 주변에 있는 중국 일본 러시아였다.
한국 근현대사에서 한반도를 위협한 것은 서구제국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강대국들이었다. 이들은 전통적인 봉건주의로, 일본식 근대문명으로, 소련의 사회주의로 각각 한반도를 지배하려고 했다. 한국 근현대사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바로 이런 주변 강국들의 위협을 어떻게 막을 수 있는지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미국과 연대해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고 기독교를 믿는 것이었다. 조선에 이런 암시를 준 것은 역설적으로 중국이었다. 청국의 실력자 이홍장은 조선에 미국은 영토적인 야심이 없는 나라라고 설명하면서 조선이 러시아의 침략을 막으려면 미국과 수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외교관 황준헌은 미국의 종교인 기독교는 중국의 종교인 유교보다 몇만 배 낫다고 주장했다. 고종은 이런 권고를 받아들여 미국과 연대해 주변 강국의 침략을 막으려고 했다.
1882년 조선은 미국과 조미조약을 맺었고 제1조는 주변 나라들이 조선을 부당하게 대우할 경우 미국이 조정자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미국은 이 조약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고종은 조선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미국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절당했다. 하지만 미국 선교사들은 달랐다. 1884년부터 조선에 들어오기 시작한 미국 선교사들은 씨를 뿌리러 왔는데 추수를 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 후 많은 선교사가 한국에 오게 됐고 한국은 미국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선교지가 됐다. 미국 정부는 한국에 대해 무관심했지만, 미국 선교사들은 한국이야말로 세계 선교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미국 정부가 한반도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두게 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였다. 미국은 한반도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우기를 원했다. 그러나 미국이 원한다고 그런 나라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선교사들로부터 기독교와 민주주의를 배운 한국인들은 미국이 한반도에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들려고 할 때, 미국과 협력해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 대한민국은 주변국, 특히 소련과 중국 공산주의의 위협 아래 있었다. 이런 대한민국이 안전해진 것은 1953년 미국과 맺은 한미동맹 덕분이다. 이 군사동맹으로 대한민국은 주변 강대국으로부터 침략을 받지 않게 됐다. 하지만 이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한국과 미국의 기독교인들이 맺고 있는 영적인 동맹이다. 두 나라의 기독교인들은 오랫동안 아시아의 민주화와 복음화를 위해서 함께 노력해 왔다.
우리 주변 강대국들은 한반도를 자신들의 지배 아래 두려고 했다. 20세기 전반에는 일본이 그랬고, 20세기 후반에는 소련이 그랬다. 지금 중국은 아시아 대륙에서 다시금 패권을 잡으려고 한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그것은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자유 세계와 연대해 아시아 대륙을 자유와 복음으로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여기에 한국 기독교의 시대적인 사명이 있다.
서울신대·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