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합·배송·물류 … ‘원하는 목적대로’ 車 만들어드립니다

입력 2022-07-09 04:05
게티이미지

스웨덴 통신회사 에릭슨은 지난해 3월 공식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제목은 ‘공유 모빌리티: 왜 그들은 차를 공유해야 하는가’. 여기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밀레니얼 세대는 자동차를 소유하는 것에 대한 관심을 잃고 있다. 자동차는 사회·경제적 지위를 상징하는 수단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는 중이다.’

자동차는 ‘소유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희미해지자 완성차 업체는 차량 공유 서비스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카카오택시 같은 라이드 헤일링(ride-hailing·차량 호출) 서비스가 대표적이다. 산업계는 차량 공유 서비스 시장 규모가 지난해 120만대 수준에서 2030년 490만대까지 확장할 것으로 추산한다. 이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꺼내든 카드가 목적기반모빌리티(PBV)다. PBV는 특정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제작한 차량이다. 스케이트보드 형태의 전용 플랫폼에 상부 차체를 결합하는 구조다.

기아의 첫 PBV ‘니로 플러스’

기아는 지난 5월 30일 브랜드의 첫 PBV인 ‘니로 플러스’를 출시했다. 택시에 최적화했다. 디스플레이에 내비게이션, 앱미터(미터기), 디지털 운행 기록계 등을 모았다. 손님이 쾌적한 승차감을 느낄 수 있도록 전고를 80㎜ 높였다. PBV는 특정 목적을 겨냥한 차량인 만큼 연관 단체와 협업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기아는 친환경 택시를 빠르게 보급하기 위해 카카오모빌리티, 한국교통안전공단 등과 협업했다.

마이카(My Car) 시대가 저물면 완성차 업체는 또 다른 판로를 찾아야 한다. 그렇게 눈을 돌린 곳이 기업 간 거래(B2B) 시장이다. PBV는 B2B 시장 공략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완성차 업계에서 가장 주목하는 분야는 유통·물류 시장이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전자상거래가 급격히 확산하면서 관심도 커졌다. 한국온라인쇼핑협회는 올해 전자상거래 거래액이 224조26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5.4%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다. 내년에는 이보다 10.6% 올라 250조원을 돌파할 전망이다.

GM ‘EV600 van’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이미 물류업체에 배송 차량으로 공급할 목적으로 PBV를 활발하게 개발하고 있다. GM은 지난해 전기 상용차 전문 브랜드 ‘브라이드 드롭’을 출범했다. 글로벌 물류기업 페덱스에 EV600 500대를 공급하기로 한 데 이어 최근엔 우선 생산 계약분 2000대를 추가 계약했다. EV600은 PBV와 유사한 형태의 경량 전기차다. 상품이나 서비스를 장거리 운송하는 데 최적화했다. 미국 최대 유통기업 월마트와도 EV600, EV410 등을 5000대 납품하는 계약을 맺었다. 전기차 스타트업 리비안은 아마존에 물류 전용 전기차 10만대를 투입하기로 하면서 ‘아마존의 차’로 유명해지기도 했다.

너도나도 PBV 시장에 뛰어들면서 2020년 기준 글로벌 완성차 시장에서 5% 수준이던 PBV 비중은 2030년 25%까지 치솟을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내연기관차와 달리 전기차는 구조 변경이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전기차 PBV는 많은 물건을 적재할 수 있도록 설계 변경이 가능하기 때문에 물류 업계와의 협력은 앞으로 속도를 더해 갈 것”이라고 말했다.

기아도 유통·물류 시장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정부에서 내년 4월부터 경유 기반 택배차량에 신규 면허를 발급하지 않기로 하면서 PBV 활용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다. 첫출발은 ‘쿠팡카’다. 기아는 지난 4월 쿠팡과 ‘PBV 비즈니스 프로젝트’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쿠팡에 납품할 PBV를 개발하기로 했다.

기아 ‘봉고 III EV 냉동탑차’

대부분 유통·택배회사는 자영업자인 배송기사와 외주 계약을 맺고, 기사가 소유한 차량으로 배달한다. 그러나 쿠팡은 배송기사를 직접 고용하고 배송차량도 직접 구매·관리한다. 쿠팡이 관리하는 배송차량은 4000~5000대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기아는 기존 쿠팡카보다 도심 물류 운송에 적합하고 기사의 업무 편의성을 높인 ‘뉴 쿠팡카’ 제작에 돌입한다. 가벼운 소재의 적재함 선반을 장착하고 슬라이딩 도어를 설치해 배송 효율성을 높일 계획이다. 지난 4일엔 전기차 ‘봉고Ⅲ 냉동탑차’를 출시했다. 여기엔 고전압배터리를 활용한 냉동기를 장착했다. 기아 관계자는 “2030년에는 PBV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B2B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모든 걸 배송하는 시대가 열렸고 그 형태도 다양화하고 있다. 이커머스와 모빌리티가 결합한 B2B 시장은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럽과 미국 등에서는 물류 사업을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 경형 상용차(LCV)를 주로 활용하고 있다. LCV는 총중량 3.5t 미만의 밴, 미니버스, 픽업트럭 등의 중소형 상용차다. 업계에선 LCV의 전동화 속도가 향후 PBV의 성장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척도라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한 시장조사기관은 LCV 전동화 규모가 지난해 40만대 수준에서 2025년 약 270만대, 2030년 약 500만대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