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가뒷담] 장관들이 미는 ‘페이퍼리스’ 회의… 실무진은 ‘스트레스’

입력 2022-07-05 04:06

최근 경제 부처를 중심으로 장관 주재 내부 회의를 열 때 별도 보고서를 준비하지 않는 ‘페이퍼리스(Paperless)’ 회의가 확산하고 있다.

정권 초 여러 정책 추진 과정에서 잦은 회의에 따른 실무 직원의 보고서 작성 부담을 줄여주자는 취지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음으로써 다양한 아이디어를 유도한다는 목적도 있다. 하지만 정작 실무진 사이에선 “페이퍼리스가 더 부담스럽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페이퍼리스 회의를 처음 시작한 건 국토교통부다. 원희룡 장관은 지난 5월 중순 취임 이후 거의 매일 아침 실·국장과 페이퍼리스 회의를 한다. 통상 각 실·국별 주요 정책 관련 동향 등 간단한 보고서가 테이블에 오르기 마련이지만, 원 장관은 취임 직후 “보고서가 있으면 오히려 그 내용에만 얽매여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안 나온다”며 보고서를 없앨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최근에는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매주 월요일 열리는 확대간부회의에서 각 실·국별 서면 자료를 없애라고 지시했다. 물가 등 핵심 현안이나 추 부총리가 특별히 관심을 두는 사안만 논의하면서 회의가 간소해졌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정작 과장급 이하 직원들 분위기는 다르다. 한 경제 부처 공무원은 “보고서가 없다고 해서 일이 줄어든 게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공무원은 “과거에는 통계 자료나 관계 법령, 쟁점 등을 보고서에 정리하기만 하면 됐지만 이젠 ‘알맹이’를 만들어서 실·국장에게 카카오톡으로 줘야 하니 오히려 부담이 더 크다”고 덧붙였다.

장관 주재 회의가 잦은 데 따른 고충을 토로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5월 직장인 익명 게시판 앱 블라인드에는 한 국토부 공무원이 원 장관 주재 회의가 잦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제주도(지사) 때도 이랬느냐”며 불만 섞인 글을 올리기도 했다.

세종=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