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의 헌책방] 애서가를 위한 여름 이야기

입력 2022-07-09 04:03

학창 시절 선생님은 우리나라가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라서 살기 좋은 곳이라고 했다. 하지만 책 다루는 일을 하면서 사계절이 있다는 게 좋은 것만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계절마다 겪는 극심한 온도 변화와 습기가 산과 들의 풍경을 아름답게 만들어줄지는 몰라도 책에는 재앙이나 마찬가지다. 매년 여름이면 책방은 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엄청난 습기가 몰려오는 기간이기 때문이다.

비단 책방만이 아니다. 집에 책을 많이 쌓아두고 사는 애서가들에게도 여름 대비는 중요하다. 한번 망가진 책을 원래대로 복구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책장에 정리했더라도 평소 관리를 잘해야 좋은 책과 오래 즐거움을 나눌 수 있다.

책은 나무에서 얻은 펄프를 주원료로 만들기에 그 자체로 식물이라 생각하며 관리하면 좋다. 관리의 기본은 온도, 습도, 햇빛 세 가지다. 온도는 너무 낮거나 높으면 안 되고 계절에 따라서 온도 편차가 커도 좋지 않다. 정부에서 권장하는 실내 온도면 적당하다.

습도는 가장 중요하다. 역시 너무 낮아도 좋지 않고 높으면 책이 금방 휘어진다. 가격대가 조금 높더라도 책이 있는 공간에 정밀한 온습도계를 하나 놓으면 관리하기 좋다. 책이 좋아하는 습도는 40~50% 정도로 사람에게는 약간 건조하다고 느낄 만한 수준을 유지하면 적당하다.

마지막으로 햇빛을 주의한다. 볕이 잘 들어온다는 이유로 아파트 베란다에 책장을 두면 책과 책장 모두에 안 좋다. 직사광선이 들어오는 공간은 어디든 피하는 게 책을 보호하는 첫 단계다. 햇빛에 닿아 책이 바래면 원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없다는 걸 명심하자. 특히 여름의 뜨거운 태양은 절대 금물이다.

책을 책장에 두지 않고 쌓아두는 경우 너무 많이 쌓으면 아래 책들이 틀어진다. 여름엔 습도가 높아 변형이 더 심하다. 가능하다면 300쪽 내외 단행본 기준으로 10권 이상 쌓지 않도록 한다. 책에 앉은 먼지를 털어주는 것도 잊지 말자. 가전제품이 그렇듯 책에도 먼지가 잘 붙는다. 책에 앉은 먼지는 오래될수록 책에 단단히 붙는 성질이 있다. 떡처럼 굳은 먼지는 닦을 수 없는 지경이 되기도 한다.

책장에 책을 너무 빡빡히 정리하거나 한쪽으로 기울어지게 비스듬히 꽂아도 책이 상할 수 있다. 책과 책 사이에 1~2㎜는 간격이 있어야 책이 숨을 쉴 수 있다. 습도가 높은 여름엔 특히 책장 관리에 신경 써야 곰팡이가 피는 걸 막을 수 있다.

만약 장마에 비 피해를 보아 책이 물에 젖었다면 어떡해야 할까? 100% 원래 모습으로 돌리지는 못하겠지만 유용한 방법이 있다. 책을 말리겠다고 헤어드라이어나 다리미를 쓰면 절대 안 된다. 책이 젖었을 때는 수건 등으로 물기를 최대한 제거한 후 냉동실에 하루 정도 넣어두면 원래 상태로 돌아온다. 이때 냉동실에 생선 같은 음식물이 들어 있으면 책에 냄새가 밸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책은 사계절 내내 숨을 쉰다. 이 멋진 책과 오랫동안 함께 어울려 놀고 싶다면 늘 가까이 두고 자주 어루만져줘야 한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