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국전력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가스공사 등 14곳을 ‘재무위험 공공기관’으로 지정했다. 14곳의 부채가 372조1000억원이다. 연 이자율 4%로 쳤을 때 하루 이자만 400억원이 넘는다. 2019년 기준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금융 공기업 부채 비율은 20.6%로,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높았다. 그만큼 우리 공기업의 부실이 심각하다는 것이다.
공기업이 부실하다는 건 나라가 부실하다는 것이다.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만 보면 그렇게 나쁜 수준은 아니라고 정부는 주장한다. 그러나 국가채무 증가율이 3.2%로 OECD 평균 1.8%를 크게 앞지른다는 한국경제연구원의 조사는 고속 주행 중 브레이크가 고장 난 트럭이 내 차 뒤에 있다는 느낌을 준다. 공공기관 부채가 크다는 것은 고장 난 트럭의 화물칸이 과잉 적재라는 말이다. 등골이 오싹해진다.
사정이 가장 심각한 곳은 한전이다. 전기요금을 7월부터 ㎾h당 5원 올렸지만 146조원에 달하는 부채 규모를 생각하면 별 도움이 안 된다. 올해 발행한 한전의 공사채만 12조5000억원 규모다. 한전의 빚 조달로 공사채 금리와 시중 이자율이 올라 중소기업 자금난이 더욱 심해졌다. 은행 보고 이자 장사 말라고 대통령과 금융감독원장이 경고했다.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계속 금리를 올려 어쩔 수 없었으나 공기업 부실은 우리 정부의 누적된 책임이다.
공기업 부실의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정부가 할 일을 재정으로 안 하고 공기업을 통해서 했기 때문이다. 정부 예산 편성과 국회 의결을 우회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한국수자원공사가 짊어진 4대강 사업과 LH의 임대주택 사업이 그 예다. 둘째는 공공요금을 올려주지 않아 해당 사업을 맡은 공기업 빚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대표적 사례가 전기요금이다. 지난해 국제유가가 올라 연료비가 뛰었는데 탈원전으로 전력생산비를 올린 문재인정부는 작년 말 전기요금 인상을 거부했다. 새 정부에 폭탄 돌리기를 한 셈이다.
공기업 빚은 결국 국민 세금으로 갚을 수밖에 없다. 세금으로 내나 공공요금으로 내나 어차피 국민이 내니까 그 돈이 그 돈 아니냐고 할 수 있다. 그렇지 않다. 소비자가 낼 돈을 납세자가 내는 것은 수익자 부담 원칙에 어긋나며 과잉 소비와 자원 배분의 왜곡을 가져온다. 이명박정부 때 묶어버린 전기요금으로 전력 수요는 급증하고 전력 공급은 모자라 결국 2011년 수도권 순환 정전이 터졌고, 그 후 우리 정부는 2013년까지 절전 규제를 시행할 수밖에 없었다. 춥고 더워 가장 전기가 필요할 때 전기를 아껴 쓸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세계 최저 수준인 전기요금은 수입 에너지 가격이 급등한 상황에서도 전력 소비를 증가시켜 무역 적자와 환율 상승의 주요인이 되고 있다.
요약하자면 공기업 부실은 정부가 할 일을 외상으로 공기업에 시켰고 공기업이 받아야 할 요금을 묶어버렸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공짜로 공기업에 일을 시켰고, 선거를 앞두고 공기업을 방패 삼아 물가 억제와 국민 부담 완화라는 생색을 챙겼는데 이 모두 마이너스통장에서 돈 빼 쓰듯이 공기업 자원을 써먹은 것이다.
공기업의 주인은 국민이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직접 챙길 수 없어 정부에 위임했는데 정부가 이렇게 부실하게 만들었다.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의 전형이다. 공기업이 부실화되면 전력, 가스, 철도, 도로, 물관리, 토지개발 등 주요 인프라산업이 병들게 된다. 국가의 경쟁력과 생산성 그리고 국민의 삶의 질이 떨어진다. 공기업은 국민 경제의 귀중한 자산이다. 정부의 마이너스통장이 아니다. 감당할 수 없으면 차라리 민간에 맡겨라.
조성봉(숭실대 교수·경제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