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구·사무용품 유통업체 빅드림의 여상훈 실장은 요즘 사업이 잘되는데도 고민이 크다. 그는 7년 전 부친이 운영하는 회사에 합류한 뒤 과학 교구 제조업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오프라인 매장 고객이 감소하자 제품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덕분에 10억원대이던 연 매출은 50억원대가 됐다. 하지만 이 선택으로 그는 정부의 ‘가업상속공제’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됐다. 정부가 업종 변경을 이유로 지원 대상에서 제외했기 때문이다. 여 실장은 3일 “(가업 상속 대신) 창업을 하면 지원금을 받으니 새로운 업종으로 회사를 세울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아버지가 세운 회사는 사라지게 돼 가업상속공제를 결정했다”면서 “그런데 ‘백년기업’을 위한 상속지원제도라더니 가업을 더 키웠는데 세금만 늘었다”고 말했다.
중견·중소기업의 가업 승계를 지원하는 정부 정책이 헛돌고 있다. 세제 지원은 확대됐지만 가업 승계를 가로막는 ‘업종 변경 제한’이라는 걸림돌은 그대로다. 업종 간 경계가 무너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가업상속공제는 연 매출 4000억원 미만 기업의 승계를 지원하기 위한 제도다. 피상속인이 10년 이상 경영한 기업을 상속인에게 정상적으로 승계하면 최대 500억원까지 상속가액에서 공제해준다. 상속 후 정규직 근로자 수, 기업의 자산, 상속인의 지분 등을 유지해야 하는 사후관리 조건이 있다.
천문학적인 상속세를 고려하면 괜찮은 지원책이지만 업종 유지 조건이 발목을 잡는다. 상속인은 상속 후 7년간 표준산업 중분류상 동일 업종을 유지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제분업에서 제빵업으로의 전환은 중분류상 모두 ‘식료품 제조업’이므로 가능하다. 하지만 모피제품 제조업에서 모피 및 가죽 제조업으로 업종 변경은 불가능하다. 모피 제조업 중분류는 ‘의복, 의복 액세서리 및 모피제품 제조업’, 모피 및 가죽 제조업은 ‘가죽, 가방 및 신발 제조업’으로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신사업 매출이 기존 사업 매출을 능가해 주력 사업 분야가 바뀌는 경우에도 공제 대상에서 제외된다.
이 때문에 가업 상속 지원을 받는 중소기업들은 사업 다각화가 힘들다. 사후 관리 요건 탓에 신사업 진출이 어렵고 이는 결국 경쟁력 약화로 이어진다고 하소연한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업종 및 사후관리 요건 완화 등 기업승계제도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지난달 발표된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에는 업종 요건 완화 관련 내용이 빠졌다.
정부는 업종 변경 제한이 폐지되면 기술·노하우 등이 다음 세대로 이어지도록 하는 가업상속공제 도입 취지가 약해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렇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경제 상황을 고려하지 않는 구태의연한 태도라는 목소리가 높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산업 구조의 변화에 맞춰 가업을 이어가기 위한 업종 전환은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권민지 기자 10000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