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근로자는 아파도 마음 놓고 쉬지 못한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20년 9월 발간한 보고서를 보자. 한국은 근로자들이 아플 때도 쉬지 못하고 일하는 비율이 유독 높다. 아파도 출근한 사람의 비율은 23.5%로 아파서 쉰 비율 9.9%의 2.37배다. 유럽 국가들 평균인 0.81배보다 크게 높다.
상병수당(부상·질병수당)은 아프면 쉴 권리를 보장해 주는 제도다. 근로자가 업무 외 질병·부상으로 경제활동이 어려운 경우 치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소득을 보전하는 것이다. 1883년 독일에서 처음 도입됐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는 한국과 미국(일부 주에서는 도입)을 제외한 모든 국가가 이 제도를 운용 중이다. 우리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상병수당 도입 필요성이 제기됐다. 2020년 5월 코로나 감염 증세가 있던 근로자가 당장의 생계 때문에 출근해 직장 내 집단 감염이 발생한 일이 있었다. 같은 해 7월 노사정 사회적 협약이 체결되며 이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됐다. 마침내 우리도 아픈 노동자의 쉼과 소득 보장을 위한 상병수당 시범사업이 오늘부터 전국 6개 지역에서 시작된다. 지원액은 2022년 최저임금의 60%인 하루 4만3960원. 직장인 자영업자 특수고용직 등 대부분이 신청 가능하다. 시범사업을 거쳐 2025년 본 제도가 도입된다.
지금이라도 상병수당이 도입된 것은 다행이지만 제도 설계가 잘못됐다는 비판도 나온다. 우선 보장 수준이 국제노동기구(ILO)가 권고하는 근로능력 상실 전 소득의 60%에 한참 못 미친다. 이 정도 금액으로 쉬면서 치료받을 동력이 될까. 또 상병수당을 받는 기간에서 제외되는 ‘대기기간’이 길다. 시범사업 대기기간은 7일 혹은 14일이다. 입원한 경우는 3일이다. 예를 들어 대기기간이 7일이라면, 코로나19에 감염돼 7일간 자가 격리할 경우 8일째 되는 날부터 보장받을 수 있다. 서둘러 일터에 복귀해야 하는 취약 노동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시범사업 운영 중 보장 수준, 대기기간 등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해 보인다.
한승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