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표된 질병관리청의 ‘2021년 감염병 감시연보’를 보면 코로나19를 제외한 대부분의 감염병은 감소한 걸로 나타난다. 결핵이나 수두, 홍역, 백일해, 성홍열 등이 대표적이다. 코로나19 유행에 따른 손씻기, 마스크 착용 등 개인 위생 실천과 거리두기로 인한 사람 간 접촉 빈도 감소 등의 영향 때문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이런 와중에 전년보다 증가한 몇몇 감염병이 있다. 특히 2급 감염병 가운데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CRE)감염증과 E형 간염의 증가세가 눈에 띈다.
CRE는 현존 가장 강력한 카바페넴 항생제도 듣지 않는 이른바 ‘슈퍼 박테리아(초강력 항생제 내성균)’로 불린다. 혈액에서 내성균이 검출될 경우 치사율이 50%를 웃돈다. 최근 몇 년 새 공중 보건에 새 위협 요인으로 급부상했고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증가 추세다. 질병관리청은 2017년부터 전수감시 대상으로 지정했다. 지난해 CRE감염증 신고는 2만3311건으로 전년(1만8113건)보다 28.7% 늘었다. 2017년 5717건, 2018년 1만1954건, 2019년 1만5369건 등 매년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CRE감염증은 주로 중증 환자가 많은 종합병원과 요양병원에서 직·간접 접촉 등으로 전파된다. 인공호흡기나 중심정맥관 등 인체에 삽입되는 의료장치가 오염됐거나 부상, 수술로 인해 CRE균이 몸 안으로 들어갔을 때 걸릴 수 있다. 특히 요양병원에서 감염된 뒤 치료를 위해 대학병원으로 전원·의뢰될 경우 스크린(선별)이 잘 안돼 전파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고려대안암병원 감염내과 윤영경 교수는 4일 “요양병원은 고령에 복합질환을 앓는 중증 환자가 많아 감염에 취약하고 항생제를 수시로 쓴다. 게다가 항생제 내성균 검사 시스템을 갖춘 곳도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코로나 유행 기간임에도 CRE감염증이 증가한 것에 대해선 “감염내과 의사들이 코로나 방역에 내몰리다 보니 항생제 사용과 의료 관련 감염증에 신경을 쓰지 못한 측면도 있다”고 덧붙였다.
비싼 약값 등 문제로 새로 개발된 항생제의 국내 도입이 더딘 것도 치료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 윤 교수는 “미국에서 5년 전부터 쓰고 있는 새 항생제를 비롯해 해외에서 사용을 권고하는 내성균 치료제를 우리는 시도도 못하는 실정이다. 한국의 항생제 진료 지침은 2015년 해외 지침에 머물러 있다”고 했다. 신규 항생제의 신속 도입을 위한 국가 차원의 지원과 함께 항생제 내성균 환자를 걸러내는 요양병원과 대학병원 간 네트워크 구축, 내성균 환자의 선제 격리를 위한 1인 중환자실 확대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E형 간염은 A형 간염처럼 오염된 음식과 물 등을 통해 전파되며 간에 급성 염증을 일으킨다. B·C·D형 간염처럼 만성화되진 않는다. 다른 간염에 비해 일반인에겐 덜 알려져 있다. 2017년 유럽산 소시지에서의 E형 간염 유발 논란으로 이슈화된 적 있다. 국내에선 2020년 7월부터 전수감시 대상에 포함됐다. 지난해 E형 간염 발생은 494건으로 전년(191건)보다 2.6배 증가했다.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2020년 중반에 전수 감시 체계에 들어와서 지난해 증가폭이 크게 보이는 측면이 있다”면서 “실제 어느 정도 발생하고 증가 속도가 어느 정도인지는 질병에 대한 인지도가 올라가고 감시 보고 체계가 조금 더 안정화돼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형 간염은 감염 후 잠복기(7~10일)를 지나 근육통, 울렁거림, 복통, 설사, 복부 불편감, 진한 소변색 등의 변화가 생긴다. 무증상으로 가볍게 지나가는 경우도 많다. 강동경희대병원 소화기내과 신현필 교수는 “환자의 대부분은 1~6주 정도에 자연 치유되나 극소수 환자에서는 간부전으로 진행돼 간 이식을 필요로 할 수도 있다. 임신부도 경과가 나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E형 간염은 다른 간염과 달리 인수공통감염병으로 동물 매개 감염이 많다. 특히 야생 동물의 피나 담즙, 간 등을 날로 먹을 때 감염될 수 있어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신은 중국 등 제한된 국가에서만 쓰이고 있다. 위험지역 방문 시 손씻기 등 개인위생을 철저히 지키고 안전한 식수나 조리된 음식을 먹는 게 최선의 예방책이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