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한정위헌 결정도 위헌임을 분명히 하며 대법원 재판을 취소했다. 헌재가 법원의 재판을 취소한 건 1997년에 이어 사법사상 두 번째다. 대법원은 법 조항의 해석을 문제 삼는 한정위헌의 기속력(구속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 최고 사법기구인 헌재와 대법원 사이 갈등이 재점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헌재가 법원 재판을 다시 판단하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논란이 커질 가능성도 있다.
헌재는 30일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법원의 재판을 헌법소원심판 대상에서 제외한 헌법재판소법 68조 1항(재판소원금지조항)의 일부 부분이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헌재는 헌법소원을 청구한 A씨의 재심 청구를 기각한 법원 판단도 취소했다.
이번 헌재 결정의 핵심은 한정위헌 결정을 따르지 않은 법원 재판을 헌재가 취소했다는 데 있다. 법원 재판을 대상으로 한 헌법소원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지만, 한정위헌을 포함한 위헌 판단이 나온 법률을 적용한 재판에는 헌재가 개입할 수 있다는 취지다. 한정위헌은 법 조항을 바꾸지 않고 ‘법원이 이렇게 해석하는 한 위헌’이라고 선언하는 헌재의 변형결정이다.
헌재는 “한정위헌 결정도 ‘법률의 위헌결정’에 해당되고, 법원을 비롯한 모든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에 대해 기속력이 인정된다”고 못 박았다. 한정위헌이 단순히 법률을 해석하는 행위가 아니라 법률의 위헌성 여부를 심사하는 작업임을 재확인한 셈이다.
헌재는 “법률에 대한 위헌 결정의 기속력을 부인하는 법원의 재판은 법률에 대한 위헌심사권을 헌재에 부여한 헌법의 결단에 정면으로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러한 법원의 재판에 대해서는 헌재가 다시 최종적으로 심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헌법소원 청구인은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을 근거로 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던 A씨다. A씨는 2003년 제주도 통합 영향평가심의위원회 심의위원에 위촉됐는데, 골프장 등의 재해영향평가를 심의하는 과정에서 억대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됐다.
A씨는 뇌물수수죄를 규정하는 법 조항의 ‘공무원’에 자신과 같은 심의위원은 포함되지 않는다며 헌법소원을 냈다. 2012년 헌재는 “형법 129조 1항의 ‘공무원’에 제주특별법상 통합영향평가심의위원회 심의위원 중 위촉위원이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는 한 헌법에 위반된다”는 한정위헌 결정을 내놓았다. A씨는 헌재 결정에 따라 2013년 재심을 청구했지만 대법원에서 최종 기각되자 2014년 헌법소원을 냈었다.
A씨가 다시 재심을 청구해도 법원이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한 고법 부장판사는 “헌재가 결정을 내려도 법원에선 법이 정한 재심사유가 아니라고 보고 다시 기각할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김선택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헌재가 위헌으로 결정한 법률을 법원이 적용하는 사례를 계속 만드는 게 옳은가의 문제”라고 말했다.
대법원은 헌재 결정이 나온 뒤 공식 반응은 자제했다. 내부적으로 결정문 내용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전해졌다.
임주언 양민철 이형민 기자 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