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가 올해 임금 협상을 앞두고 “과도한 임금 인상을 자제해 달라”고 압박을 가하는 정부와 ‘눈치싸움’을 벌여야 할 상황에 놓였다. 당장 SK하이닉스는 올해 물가 상승률을 고려해 큰 폭으로 임금을 인상하라는 노조 요구를 받았다. 우수한 반도체 인력을 유치하려면 임금 인상 폭을 키울 수밖에 없는데, 이렇게 되면 정부의 메시지와 반대로 가는 회사라는 인상을 줄 수 있어 난감한 표정이다.
29일 재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 노조는 올해 물가 상승률 등을 고려해 기본급 기준으로 12.8% 수준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 요구의 절반만 수용해 6%대로 임금을 올리더라도 SK하이닉스의 초임은 삼성전자를 뛰어넘을 전망이다. 현재 대졸 신입사원 초임은 삼성전자 5150만원, SK하이닉스 5050만원이다.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와 ‘반도체 경쟁’을 하면서 임금 인상 경주도 벌여왔다. 우수 인력을 확보하려면 처우 개선이 필수라서다. 지난해부터 임금 인상 경쟁에 불꽃이 튀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초임을 2020년(4450만원) 대비 약 350만원 올린 4800만원으로 정했다. 2020년 비슷한 초임 수준이었던 SK하이닉스는 약 8%나 인상했다. 5050만원으로 삼성전자를 역전했다.
삼성전자는 지난 4월 대졸 신입사원의 초임을 기존 4800만원에서 5015만원으로 350만원 올렸다. 삼성전자 내부에서 SK하이닉스와 비교하며 문제 제기를 쏟아낸 탓이다. 다시 역전된 SK하이닉스는 삼성전자와의 인력 확보 경쟁을 위해서 큰 폭의 임금 인상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렇다고 요구안을 전폭적으로 받아들여 임금 인상 폭을 키우기도 난감하다. 정부가 대기업의 급여 인상이 인플레이션을 부추길 수 있다는 진단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SK하이닉스는 정부로부터 ‘소위 잘나가는 기업’으로 찍힐까봐 임금 협상에 대한 입장조차 표명하기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인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전자 역시 SK하이닉스의 임금 인상 폭을 예의주시하며 향후 정부의 메시지 수위를 지켜보고 있다.
재계에선 경영위기에 대응해야 하는 와중에 정부 메시지까지 고려해야 하는 ‘이중고’를 겪으면서 기업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IT 업계는 임금 인상 폭을 줄였다가 ‘개발자 이탈’이 벌어질까 노심초사한다. 한 IT 업계 관계자는 “우수한 개발자를 확보하는 가장 효과적 방안이 현재로선 임금 인상뿐인데, 정부 메시지를 고려하지 않을 수도 없고 말 그대로 ‘진퇴양난’이다. 민간 기업의 자유로운 임금 결정구조에 정부의 구두개입이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전성필 기자 fe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