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서울 중구 정동제일교회(천영태 목사)에는 오후 2시가 가까워지자 재계 총수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국내 재계를 대표하는 기업인이 총출동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들이 정동제일교회에 모인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이곳에서 열린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장녀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28일 정동제일교회에 따르면 전날 이 교회에서는 정 회장의 장녀 진희(25)씨와 김덕중 전 교육부 장관의 손자인 지호(27)씨가 백년가약을 맺었다. 두 사람은 미국 유학 중 만나 결혼까지 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장관은 김우중 대우그룹 창업자의 형이기도 하다.
현대가(家) 자녀들이 정동제일교회에서 결혼식을 연 것은 처음이 아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을 비롯해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아들 대부분이 이곳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이런 가풍은 후대에도 이어져 2014년엔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자녀도 이 교회에서 화촉을 밝혔다.
그렇다면 현대가 자녀들은 왜 정동제일교회에서 결혼식을 여는 걸까. 가장 큰 이유는 정주영 명예회장의 유지 때문으로 전해졌다. 정 명예회장의 아내인 고 변중석 여사는 평소에도 찬송을 즐겨 부르는 크리스천이었고, 정 명예회장 역시 장남(정몽필 전 인천제철 사장)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자 얼마간 신앙을 품게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역시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유명하며, 정몽혁 현대코퍼레이션 회장은 정동제일교회 권사이기도 하다. 정 명예회장은 생전에 자녀들을 상대로 가급적 결혼식은 정동제일교회에서 열 것을 권했다고 한다.
이번에 예식을 올린 신랑 지호씨의 조부인 김 전 장관은 정동제일교회 장로이기도 하다. 지호씨의 부모 역시 이 교회에서 권사 직분을 맡고 있다. 천영태 목사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김 장로님은 1980년대에 교회를 새로 건축할 때 대우그룹에 요청해 정동제일교회에 많은 도움을 주시기도 한 분”이라고 전했다. 이어 “만약 결혼식이 열린 날 우리 교회 교인의 예식이 예정돼 있었다면 장소를 내주긴 힘들었을 것”이라며 “현대에서도 이런 상황을 감안해 월요일에 결혼식을 올린 것 같다”고 말했다. 정동제일교회는 미국 감리교 선교사인 헨리 아펜젤러(1885~1902)가 세운 한국 개신교 최초의 교회 가운데 하나로 서울 종로구 새문안교회(이상학 목사)와 함께 ‘한국의 어머니 교회’로 불리기도 한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