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차를 둘러싼 기류가 묘하다. 상용화 움직임이 활발하지만, 회의론도 만만찮다. 인간의 개입 없이 자동차가 스스로 달리는 자율주행 기술을 현실화하기까지 ’도로 위 돌발상황’ 예측이 쉽지 않을뿐더러 인프라, 법규, 사회적 합의 같이 넘어야 할 난관이 산더미라서다.
길가에 놓인 자전거나 쓰레기통에 반응해 급정거를 하는 문제, 사고가 났을 때 제조회사와 소유주 중 누구에게 책임소재가 있는지를 가리는 문제, 운전자와 보행자가 동시에 위험에 처했을 때 누구를 우선순위에 둬야 하는지의 문제 등이 그것이다. 이 때문에 이른 시기에 도로에서 자율주행차를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낙관론이 사그라들고 있다.
현대자동차·기아는 지난 9일 서울 강남의 일부 지역에서 자율주행 4단계 기술을 적용한 아이오닉5로 ‘로보라이드’ 시범 서비스를 선보였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목적지를 입력하면 로보라이드가 찾아와 승객을 태우고 목적지까지 자율주행으로 운행하는 서비스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로보라이드를 시승한 뒤 미래 모빌리티 일상화를 위한 로드맵을 하반기에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장밋빛 청사진의 반대편에서 부정적 시각이 강해지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어바인캠퍼스(UCI) 소속 연구원들은 지난달에 자율주행차량 반응 테스트를 진행한 뒤 “자율주행차가 도로에 나오면 원활한 교통 흐름을 방해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자율주행차는 사고 발생 방지를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사소한 위험 요인에도 반응하도록 설계한다. 이 때문에 거리에 있는 신호등, 자전거, 쓰레기통에도 반응해 급정거하거나 방향을 튼다.
시험을 주도한 알프레드 첸 교수는 “자율주행 차량이 모든 사물을 식별하는 건 불가능하다. (사고 발생을 막기 위해) 최대한 보수적으로 자율주행 시스템을 적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오히려 잠재적 위험을 야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영국의 교통전문가 크리스티안 볼마르는 ‘홀본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매주 금요일 오후 5시에 보행자가 런던 홀본역 밖으로 쏟아져 나오면, 그 어떤 자율주행차도 움직일 수 없게 된다는 것이 ‘홀본 문제’다.
자율주행차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 완성차 업체에서도 “해 보니 쉽지 않더라”는 탄식이 나온다. 자신만만하던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트위터에 “자율주행이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고 썼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 4월 뉴욕오토쇼에서 기자 간담회를 갖고 “자율주행 차량은 법규 등 변수가 많아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본다. 오히려 도심항공모빌리티(UAM)가 더 빨리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했다.
한국의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레벨 5단계의 자율주행차가 나오는 것은 굉장히 먼 일”(이경수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 교수) “현실적으로 자율주행 레벨 4~5단계가 가능한 시기가 언제 올지 모르겠다”(석승훈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같은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사고가 나면 책임 소재를 어디에 둘지, 운전자와 보행자가 동시에 위험에 처하면 누구를 우선할지, 택시·버스 기사의 일자리는 어떻게 할지 같이 사회적으로 합의를 거쳐야 하는 문제도 많다.
업계 관계자는 27일 “자율주행차 상용화가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는 초기의 낙관론이 사라지고 있다. 생명과도 직결하다 보니 도입 초기 사고가 나면 혹독한 침체를 겪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