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문란” 尹의 격앙… ‘경찰 통제’ 드라이브 재확인

입력 2022-06-24 00:02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경찰 치안감 인사 번복’ 논란을 “국기 문란”으로 표현했다. 윤 대통령이 경찰을 향해 발언 수위를 높이면서 다음달 퇴임을 앞둔 김창룡 경찰청장에 대한 거취 문제가 떠오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사진은 이날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청사.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경찰 치안감 인사 번복’ 논란의 책임 소재를 경찰로 돌렸다. 그것도 “국기 문란”이란 표현을 두 차례 꺼내 강한 분노를 표했다. 일차적으로는 인사권자인 대통령 결재 없이 인사가 발표돼 파장을 일으킨 데 대한 문책이지만, 현 정부가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경찰 지휘·통제 강화를 둘러싼 경찰의 집단반발 움직임에 대한 엄중 경고로도 풀이된다. 윤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행정안전부의 경찰 통제 방안에 힘을 실어주면서 경찰 지휘부 운신의 폭도 좁아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번 논란에서 ‘경찰 책임론’에 쐐기를 박았다. 앞서 경찰청은 “관행적으로 대통령 결재 전에 조율이 끝난 인사 내용을 발표했다”고 설명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공무원으로서 할 수 없는 과오”라고 규정했다. 경찰이 의도적으로 ‘인사 번복’ 논란을 키운 게 아니냐는 시각이 담겼다. 대통령실이나 행안부가 인사안을 뒤집은 것 아니냐는 식의 논란이 계속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의중도 있어 보인다.

나아가 행안부 내 ‘경찰국’ 신설 등 경찰 직접 통제 강화 방안을 두고 경찰이 정부와 맞서는 듯한 모양새를 보이는 것과 관련해 기강 잡기에 나선 성격도 있다. 윤 대통령은 수사권 조정 이후 비대해진 경찰 조직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측근으로 꼽히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이 취임 첫날부터 경찰제도개선 자문위원회를 경찰 개혁 방안 마련을 지시한 데도 윤 대통령 의중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많다. 이번 일이 경찰 견제 드라이브를 본격적으로 거는 계기가 될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다만 인사 번복 논란의 실체가 아직 불분명한 상황에서 경찰에 모든 책임을 씌우려 한다는 반발도 거세다. 경찰과 행안부의 거듭된 설명에도 불구하고 행안부에 파견된 치안정책관이 왜 최종안이 아닌 중간 버전을 경찰청에 전달했는지, 이를 받은 경찰청은 왜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공지한 것인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경찰 한 간부는 “서로 뻔히 알고 있는 관행을 꼬투리 잡아 ‘인사 번복’이라는 논란의 핵심을 피해가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의 날 선 발언이 나오자 경찰 지휘부도 당황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경찰청은 이날 추가적인 입장 발표 없이 상황을 주시했다. 한 경찰 간부는 “워낙 센 대통령 발언이 나오면서 경찰 지휘부도 더 이상 목소리를 내기 부담스러워 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윤 대통령이 ‘경찰의 국기문란’으로 이번 상황을 정리하면서 김창룡 경찰청장의 거취 문제도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경찰 인사라인에 대한 문책은 물론이고 청장 책임까지 물을 수 있는 사안이라는 것이다. 김 청장은 임기를 30일 남겨둔 상태다. 김 청장이 물러날 경우 사실상 다른 경찰 지휘부가 직을 걸고 행안부 경찰 통제에 맞서 의견을 개진하기란 쉽지 않다. 김 청장은 퇴근길에 “(용퇴론에 대해) 입장을 밝히기 적절하지 않다”면서도 “직에 연연해 청장의 업무와 역할을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했다.

일선 경찰관들의 반발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전국 시·도 경찰직장협의회장단은 이날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훼손하는 일련의 행위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총경급 간부의 1인 시위도 시작됐다.

김판 기자 pan@kmib.co.kr